<앵커>
'불황형 소비'의 그림자는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짙어지고 있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알뜰 소비족'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먼저 김예원 기자 리포트 보시고 이어가겠습니다.
<기자>
서울의 한 편의점.
최근 대학생 신홍석 씨는 점심 시간이면 편의점을 찾습니다.
치솟은 외식 물가에 값싼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이른바 '편도족'입니다.
[신홍석 / 대학생: 평소에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변 식당을 자주 애용하곤 했었는데, 요새 물가가 좀 오르다보니까 간편하게 편의점에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채소, 고기, 밀가루까지 값이 안 오른 식재료가 없다보니 음식을 만들어 먹기 힘든 1인 가구도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임광섭 / 대학생: 아무래도 야채가 저는 한 개씩 사는데도 몇 백원 차이이긴 하지만, 그 몇 백원도 꽤 많이 올랐다고 생각하거든요. 장 보는데 요새 물가가 올라가지고 해먹기도 애매해서…]
이같은 '편도족'의 증가로 이달 들어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50% 이상 뛰었습니다.
아예 외식을 줄이고 며칠치 도시락을 싸는 '밀프렙족'도 등장했습니다.
실제 한 이커머스 업체의 도시락 관련 상품 판매가 전년 보다 최대 80% 이상 늘었습니다.
모든 제품을 5천 원 이하의 균일가로 판매하는 다이소도 새로운 장보기 명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3개월간 다이소 매출은 13% 증가했는데, 그중에서도 식품 매출이 가장 큰 폭으로 올랐습니다.
이밖에 레깅스, 와이셔츠 등 의류 품목도 5천 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에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일반 맥주보다 40% 가량 저렴한 '발포주'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 캔에 1,600원 정도로 훨씬 저렴하지만, 도수와 맛은 일반 맥주와 비슷해 가성비가 높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로 우리 경제가 복합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과시 위주의 소비 문화가 실속을 따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김예원입니다.
<앵커>
편도족, 밀프렙족..이런 신조어가 나오는가 하면,
MZ세대들 사이에서는 아예 소비를 하지 않는 '무지출챌린지'까지 등장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소위 '길거리 지표'는 역사적으로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인식되곤 했는데,
지표가 들어맞았던 건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어서 박승완 기자가 분석해 드리겠습니다.
<기자>
'립스틱', '넥타이', '미니스커트'는 불황에 판매량이 늘어난다" 대표적인 길거리 경제 지표입니다.
비교적 저렴하게 행복을 살 수 있는 품목들이기 때문인데, 쓸 수 있는 돈이 부족한 소비자들이 그나마 싼값의 사치품 구매를 늘리는 거죠.
1920년대 예고 없는 대공황의 충격을 겪은 미국은 수치로 내다볼 수 없는 경제 위기를 소비자들의 행동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준 의장은 동네 세탁소의 손님 수나 쓰레기양을 경기 예측의 신호로 활용했다고 하죠.
세탁소 손님이나 가전제품 포장지 쓰레기가 증가하면 경기가 좋아지는 조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기 가늠자는 소주 소비량. 경기가 나빠지면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이 맥주보다 값이 싼 소주를 더 찾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밖에 불황에는 매운맛이 인기를 끈다고 하는데, 비용을 덜 들여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함이라 하죠.
또 거리에서 나눠주는 상품권 할인율이 낮아지면 경기가 좋아지는 신호라고 합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성형외과가, 불황에는 신경정신과가 붐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글로벌 경제 학자들은 불황은 심리 문제이며 지표보다 행동 변화가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딱딱한 숫자들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길거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국내외 각종 '길거리 경제 지표' 짚어봤습니다.
<앵커>
이처럼 우리 실물경제에서 불황형 소비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위기의 전조가 아니냐 하는 불안감,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입니다.
경기침체, 정말 다가오고 있는 건지 좀 더 자세히 분석해봅니다.
유통산업부 신선미 기자 나와 있습니다.
신 기자, 불황형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앞날이 어둡다는 의미잖아요. 위기가 진짜 오고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경제 위기'는 언제 올지 몰라 불안한데 오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된다고 하죠.
그래서 '위기'인건데, 그 동안 경제학자들의 ‘불황 예언’도 대부분 빗나갈 정도로 예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 '경기 침체'를 전망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고, 경제지표로도 확인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선 가계부터 좀 살펴보면요. 가계부채가 1800조원에 이르는 상황입니다.
저금리 시대에 너나할 거 없이 돈을 많이 빌려서 썼는데,
최근 빅스텝이다 자이언트스텝이다 이러면서 금리가 크게 올라 가계 부담이 늘고 있는데요.
실제로 최근 한국은행이 금리를 1.75%에서 2.25%로 0.5% 포인트 올리면서 가계 이자 부담은 6조8천억원이나 늘었습니다.
고물가·고금리로 실질 임금과 자산가치는 하락하면서 쓸 수 있는 돈은 지금보다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앵커>
실제 올 상반기에 개인회생 신청이 3년만에 증가로 돌아섰다고 하는데,그만큼 부담을 느끼는 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고,
아마 하반기에는 빚부담이나 소비부담이나 훨씬 심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오늘 정부가 "수출 회복 제약에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도 내놨던데,
소비도 소비지만, 이렇게 경제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수출도 여건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상황이죠?
<기자>
네. 맞습니다. 무역환경도 좋지 않은데요.
올 상반기에만 103억달러 규모의 역대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수출입현황을 살펴보면 6월 수출액은 1년전보다 5.2% 늘기는 했지만 증가율이 16개월 만에 한자릿수에 그쳤고요.
반면 수입은 같은기간 무려 20% 넘게 증가했습니다.
여기에 1300원대를 넘긴 환율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어서 당분간 무역적자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그나마 반도체와 자동차 기업들이 버팀목 역할을 해줬는데,
이들 기업마저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이른바 3고 파고에 긴축 모드로 속속 돌입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요. 어제였죠.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를 보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죠.
경기침체에 대비해 국내외 기업들이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오던데요.
<기자>
'글로벌 긴축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헤드라인이 오늘 신문의 1면을 장식했는데요.
긴장감이 고조되는 분위기입니다.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는데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5%대로 점점 떨어지고 있고, 제조업 생산능력 지수는 1년 8개월만에 최저치로 추락했습니다.
있는 설비도 가동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긴축경영이 시작되면 투자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인데요.
기업 투자가 줄면 일자리가 감소하고, 가계의 소득도 줄면서 다시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주말에 대형마트에 가보시면 '초저가', '신선하지 않다고 느끼면 환불' 이런 표현들 자주 보실 겁니다.
불황 속에 지갑을 닫는 소비자들을 한명이라도 붙잡기 위한 유통업계의 전략인데, 이 또한 불황을 나타내는 한 지표죠.
여기서 한발 더 나가면 공짜마케팅, 이른바 프리코미녹스가 등장하는 것인데요.
아직 여기까지 가진 않은 상황이긴 합니다.
<앵커>
민간이 위축되면 정부가 예산으로 역할을 해야하는데,
나랏빚도 빠르게 늘면서 이도 쉽지 않은 상황인 점도 우려스럽긴 합니다.
당장 급한불은 무엇보다 고물가를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잖아요?
<기자>
네 맞습니다. 물가가 정말 미쳤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심각합니다.
몇 달 전만해도 ‘5%대 물가’를 걱정하던 정부는 이제 ‘6%대 상승률’을 기정사실화 했습니다. 일시적으로 7%도 가능하다고 언급했는데요.
치솟는 물가에 지난달 ‘경제고통지수’도 6월 기준 역대 최고(9.0)를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고물가, 고유가, 고환율 모두 대외적인 요인에 따른 것으로 우리가 대응방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정부와 정치권, 기업, 가계가 지혜를 모아 닥쳐올 경제위기의 태풍을 피하기 위한 방파제를 단단하게 구축해야 겠습니다.
<앵커>
방파제 구축하려면 일단 국회가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구성부터 난관인 상황이고, 정부 물가대책도 아직까진 체감효과가 미미합니다.
어떻게든 지출을 줄여서 버텨보려는 시민들의 불황형 소비행태.
당국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신선미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