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물방울 화가' 김창열 원로 작가부터, 밴드 잔나비의 앨범 커버로 인기를 끈 1991년생 신진 작가 콰야까지.
작품이 걸린 곳은 다름아닌 백화점입니다.
[신현아 / 서울시 양천구: 대중들은 작품을 쉽게 접할 기회가 없는데, 백화점에서 옷이나 패션 파는 식으로 보여지니까…]
[서준호 / 부산시 해운대구: 재테크나 취미 생활로 (미술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상류층들의 전유물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냥 트레이닝복 입고 와서 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좋은 것 같아요.]
MZ세대의 '아트테크' 열풍에 백화점들이 미술품 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 3층을 아트 스페이스로 꾸며 소비자들의 쇼핑 동선 곳곳을 미술품으로 채웠습니다.
판매 호조에 한 달마다 100여 점을 전부 바꿔야 할 정도인데, 교체 시기에 맞춰 '오픈런'도 종종 벌어집니다.
[주혜인 / 신세계갤러리 디렉터: 저희가 강남점을 오픈한 시점이랑 더불어 2021년도부터 미술계가 굉장히 호황이 되었는데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시다가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게… 지금은 MZ세대의 진입이 굉장히 늘어났습니다.]
백화점이 직접 나서 '아트페어'를 열기도 합니다.
롯데백화점은 '아트부산' 기간에 맞춰 자체 아트페어를 개최했는데, 개막 전부터 6만 원짜리 VIP 입장권을 모두 팔아치웠습니다.
작품 판매까지 이뤄지는 아트페어를 여는 건 유통업계에서 롯데백화점이 최초인데요.
이곳 시그니엘 부산의 4층 전체, 520평 규모를 미술품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페어에서 최초 공개한 박서보X알레시 콜라보 와인오프너는 첫날부터 '오픈런'을 빚으며, 준비된 물량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현대백화점, 갤러리아 등도 상설 전시공간과 함께 미술 행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전례 없는 호황에 올해 1조 원을 바라보고 있는 미술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국내 유통업체들의 '아트 전쟁'이 더욱 격화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김예원입니다.
<앵커>
앞서 보신 것처럼 백화점에서 유명 화가의 그림을 만나기가 쉬워졌습니다.
아트 비즈니스를 신사업으로 본격화하면서인데요.
유통산업부 신선미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최근 백화점이 예술분야의 조직을 대거 보강하거나 강화하고 있다면서요?
<기자>
네, 백화점이 미술품 거래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인데요.
백화점에선 샤넬만 오픈런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미술품을 사기 위한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백화점이 미술 시장에 관심을 가진 건 훨씬 오래 전부터입니다. 백화점 고객은 고급 문화 수요와 접점이 많죠.
신세계와 롯데는 각각 1966년과 1979년부터 갤러리 사업을 시작해 현재 갤러리 6곳, 5곳을 운영 중입니다.
최근에는 매장 내 미술품 전시·판매에 이어 별도의 아트페어까지 개최할 정도로 훨씬 공격적으로 변했는데요.
백화점 입장에서도 프리미엄 전략의 일환으로 아트 비즈니스를 신사업으로 본격화하고 있는 겁니다.
<앵커>
신세계는 1966년 업계 최초로 갤러리를 도입할 만큼 예술 사업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아트 비즈니스 사업 본격화도 한 발 앞섰죠?
<기자>
이미 신세계는 1995년부터 미술 전담조직을 구성했는데요.
지난해부터 예술사업 확장 의지를 명확히 하면서 확연하게 달라졌습니다.
280억 원을 들여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 지분 4.8%도 확보했는데요.
최근에는 실물 작품과 NFT를 함께 선보이는 방식의 전시로, 오프라인 기반에서 한발 더 나아간 ‘아트 비즈니스 2.0’이 본격화됐단 평가입니다.
여기에 신세계 강남점은 3층을 '아트스페이스'로 이름 짓고 갤러리 공간으로 전면 리뉴얼했는데요. 매달 작품 100여 개가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입니다.
쇼핑 동선에 맞춰 전시를 하는데, 전체 작품의 순환주기가 한 달입니다. 작품을 한 번 걸면 한 달 안에 거의 팔리기 때문인데요.
작품이 바뀔 때 오픈런 현상까지 빚어질 정도입니다.
<앵커>
이에 질세라 롯데백화점도 맞불을 놓고 있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롯데백화점도 지난해 예술사업을 총괄하는 '아트비즈니스실'을 만들었는데요.
김영애 이안아트컨설팅 대표를 상무로 영입했습니다.
롯데가 갤러리 사업을 시작한 이래 임원급으로 미술 전문가를 영입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며칠 전에는 부산에서 520평 규모로 아트페어를 열었는데요.
작품 판매까지 이뤄지는 대규모 아트페어를 개최한 건 유통업계에서 처음입니다.
<앵커>
백화점 업계의 '아트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군요.
전담 조직까지 꾸리며 대응하는 이유가 뭔가요?
<기자>
우선, 국내 미술 시장이 연간 1조원대로 성장한 영향이 큽니다.
2020년까지 3년간 오히려 줄어들던 미술시장 규모는 지난해 급격하게 성장했는데요.
시장 규모는 9천억원대로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덩달아 백화점에서의 미술품 구매도 증가했는데요.
롯데백화점의 경우 6억원짜리 제품이 판매되기도 하는 등 지난해 4분기 아트 매출이 전분기 대비 3배 이상 늘었습니다.
롯데 잠실 에비뉴엘 내 갤러리는 주말 방문객이 700명을 넘어섰습니다.
<앵커>
3년간 주춤하던 미술 시장이 지난해 갑자기 성장한 이유는 뭔가요?
<기자>
예술(아트)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아트테크(Art-Tech)’ 열풍 덕분인데요.
단순 감상이 아니라 투자 목적으로 미술품을 소비하는 고객이 많아졌고, 여기에 집안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소비자 수요까지 더해진 영향입니다.
이를 주도한 건 다름 아니라 MZ세대인데요. 실제로 미술품 구매자의 40% 이상이 2030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미국과 영국, 중국, 멕시코 등 10개국 고액 자산가 컬렉터(2569명)의 절반 이상이 20~30대가 주축인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MZ세대가 미술품에 주목하는 이유는 뭔가요?
<기자>
MZ세대에게 미술품은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취미이자 돈까지 벌 수 있단 점에서 매력적인 '상품'이 됐기 때문인데요.
널뛰기하는 주식과 가상자산에 비해 안정적이고, 각종 세금의 제약에서도 자유롭단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MZ세대의 아트 테크 열풍도, 백화점이 아트 비즈니스를 강화한 주된 이유 중 하나인데요.
대표적인 체험 콘텐츠인 아트로 MZ세대를 백화점으로 끌어오는 동시에, 그림 감상으로 고객을 더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쇼핑하듯이 그림 구매가 가능해 미술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면서 백화점 입장에선 매출도 올릴 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작품이 정찰제여서 고객들은 백화점이 보증하는 예술 작품을 편하게 믿고 구입할 수 있단 느낌을 받게 됩니다.
덕분에 백화점이 아트 비즈니스를 강화한 후 방문객이 늘었는데요.
미술품 때문만이라고는 할 순 없지만 올해 4월까지 주요 3사의 백화점 방문자도 1년 전과 비교해 12.2%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앵커> 유통산업부 신선미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