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가 최근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지만 주가는 여전히 비싼 상태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우존스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뉴욕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올해 들어 전날까지 16% 하락해 같은 기간 낙폭이 1970년 이후 52년 만에 가장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S&P 500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6.8배로 지난 20년 평균치인 15.7배를 상회한다고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은 집계했다. 선행 PER이란 현 시가총액을 향후 12개월간 예상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코로나19 사태 직후 어마어마하게 풀린 유동성의 힘으로 2020년 9월 S&P 500의 선행 PER이 24.1배까지 치솟았을 때보다는 정상 궤도에 가까워진 셈이지만, 여전히 과거 평균보다 높은 상태다.
올해 증시 침체의 원인은 40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때문이지만,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이 향후 경기침체를 초래할 것이라는 공포가 더욱 주가를 끌어내리는 양상이다.
경기침체 우려라는 불확실성까지 고려할 때 앞으로 주가는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보스턴파트너스의 글로벌 시장리서치 책임자인 마이클 멀레니는 "연준의 통화 긴축 기간에 주식 밸류에이션이 떨어지고 기업 이익 성장도 느려진다"며 앞으로 몇 달 동안 훨씬 더 엄혹한 시장 환경이 펼쳐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게다가 연준이 예상보다 더 급격하게 금리를 올릴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75bp(1bp=0.01%포인트)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거의 배제하면서 두 번 정도 50bp의 금리인상이 있을 것으로 예고했으나, 시장에는 그보다 강한 긴축을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경기침체가 초래될 경우 증시 PER이 장기 평균치보다 낮은 13∼14배로 떨어질 수 있다고 멀레니는 내다봤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뉴욕증시를 2000년 '닷컴 버블'과 비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씨티그룹의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 증시가 2020년 10월 버블 상태에 들어섰고, 이제 버블 국면에서 빠져나오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닷컴버블 당시인 2000년 3월 S&P 500의 PER이 26.2배까지 올랐다가 2002년 14.2배로 수축했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PER이 8.8배까지 내려갔다.
해외 증시와 비교하면 미국 증시의 거품이 더욱 두드러진다.
팩트셋에 따르면 S&P 500 지수보다 더 고평가 상태인 증시는 벨기에, 포르투갈,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미국의 나스닥 지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이익 성장이 느려질 조짐이 보인다는 점도 뉴욕증시의 밸류에이션에 부담이 되고 있다.
1분기 실적을 발표한 S&P 500 기업들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평균 9.1% 증가해 기존 예상치(5.9%)를 웃돌았으나, 이처럼 높은 이익률이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고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에릭 린치 샤프인베스트의 자산운용 책임자는 WSJ에 "피크를 찍고 있는 기업들의 이익 성장세가 계속될 것 같지 않다"며 "커다란 경기침체가 오지 않더라도 현재의 이익 전망치는 너무 높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리서치는 기업들이 1분기 실적 발표 때 "약한 수요"라는 언급을 2020년 이후 가장 많이 했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등이 맞물린 결과, 수요가 위축되면 기업들의 이익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