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간으로 5월 3일부터 양일 간 열리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를 앞두고 원달러 환율이 1250원을 넘어서면서 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올해 원달러 환율은 4월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추세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그 수준은 한 단계 뛸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이 요즘 대내외 외환시장의 상황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250원 이상 올라가는 것은 '원화 약세'라기보다 '달러 강세'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진단이다. 1년 전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인플레이션 쇼크 이후 달러인덱스는 14%, 원달러 환율은 15% 정도 올랐다. 전 세계 통화 중 달러 가치가 유일하게 약세를 보인 통화는 중국 위안화다.
달러 가치는 머큐리(mecury·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해 4월 이후 달러 강세는 머큐리 요인에 의해 비롯됐다. 지난해 미국 경제 성장률은 5.7%로 유로 5.2%, 일본 1.6%, 그리고 한국의 4%보다 높았다. 격차는 줄어들겠지만 올해도 이 추세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올해 들어 달러 강세는 마스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뒤늦게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인식한 미국 중앙은행(Fed)이 출구전략(테이퍼링→금리인상→양적긴축)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출구전략 추진과정을 보면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이후 양적긴축까지 4년이 넘게 걸렸으나 이번에는 7개월도 단축될 가능성이 높다.
<그림 1> 미국 인플레이션 추이 (자료 :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Fed가 '성장 훼손'과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급진적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인플레이션이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 8.5%는 목표선인 2%를 4배 이상 웃도는 수준이다. 질적으로도 생활물가 중심으로 올라 미국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 고통은 대공황 이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주로 총수요 대책인 출구전략 추진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IMF·WB 춘계총회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와 머리를 맞댄 자리에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최근에 인플레이션은 총공급 요인에 기인하는 만큼 출구전략 추진만으로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 성격을 '일시적'이라고 고집할 당시부터 이 점을 간파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총공급 요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입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달러 강세를 용인해 왔다. '제2의 루빈 독트린'이라 불리는 ‘옐런 독트린’이란 용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앞으로 옐런 독트린 시대가 전개될 경우 달러 가치와 원달러 환율은 지금 수준보다 한 단계 더 뛸 것으로 예상된다.
루빈 독트린이 전개됐던 1990년대 상황을 되돌아보면 1985년 플라자 협정 체결 이후 10년 동안 엔달러 환율이 267엔대에서 79엔대로 추락하는 과정에서 일본 경제는 장기침체 국면에 빠졌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은 일본 경제를 살리는 것이 자국 경제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엔달러 환율을 다시 148엔까지 끌어올렸던 것이 루빈 독트린이다.
루빈 독트린의 실체를 이해하면 옐런 독트린이 전개될 것인가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강달러·수출주도국 통화 약세'를 통해 일본, 한국 등의 경기를 살리기 위한 공생적 목적이 강한 반면에 옐런 독트린은 강달러를 통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근린궁립화 성격이 짙어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 모든 국가가 인플레이션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달러 가치 부양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최후의 버팀목은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Fed의 계량모델인 '퍼버스(Ferbus=FRB+US)'가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달러 가치가 10% 상승하면 미국 경제 성장률은 0.75%포인트(p)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최근 달러 강세에 편승해 옐런 독트린이 전개될 가능성은 적다. 지금이 Fed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빅 스텝(0.5%p) 혹은 자이언트 스텝(0.75%p) 금리인상, 양적긴축이 우려되는 지금이 달러 가치와 원달러 환율을 보는 시각이 가장 불안할 때다. 코로나 직전에 원달러 환율 수준은 1280원대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외국인 자금이탈과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에 제2의 외환위기 우려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달러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 배제, 국가신용등급 추락, 글로벌 벤치마크 지수 탈락, 금융거래 금지 등 모든 국제금융시장 접근도가 막히면서 러시아는 1998년에 이어 모라토리움 선언 직전상황까지 몰리고 있다.
최고통수권자가 중앙은행까지 장악해 포퓰리즘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해 왔던 터키의 상황은 러시아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서든 스톱, 즉 급작스런 외자 이탈에도 기준금리를 500bp(1bp=0.01% 포인트) 내렸던 후폭풍으로 물가가 살인적으로 올라감에 따라 추가적인 외자 이탈이 발생하고 있다. 전형적인 금융과 실물 간 악순환 고리다.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의 참여로 심각한 부채에 시달려왔던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상환계수로 평가해 보면 이미 외환위기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 내부에서도 적정외환보유고 논쟁이 거세가 불고 있다.
현재 학계를 중심으로 외환보유고를 더 쌓아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일부에서는 국제결제은행(BIS)의 권유대로 9천억 달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수준의 두 배 정도를 더 쌓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을 비롯한 정책당국에서는 외화보유에 특별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정국이 외화보유는 무한정 많을 필요가 없다. 기회비용 측면에서 외화를 더 유용하게 쓸 곳이 많아 적정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정외환보유고도 절대적인 기준이 못되는 것은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제2선 자금 확보와 외화보유구성에서 자금 당장 쓸 수 있는 가용외화를 많이 가져가면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2> 한국 금융취약성지수 추이 (자료 :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2020년 3월)
적정외환보유고를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즉 과거 경험으로부터 잠재적인 외화지급 수요를 예상지표로 삼아 구하는 '지표 접근법', 외환보유고의 수요함수를 도출해 추정하는 '최적화 접근법', 외환보유고 수요함수로부터 행태 방정식을 추정해 계량적으로 산출하는 '행태 방정식 접근법'으로 구분된다.
세 가지 방법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지표 접근법이다. 1990년대 이전처럼 경상거래가 많을 때는 3개월 수입분을 가져도 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의 개념과 그 후 자본거래가 많아지면서 기도티·그린스펀의 광의 개념, 그리고 투기적인 거래가 많아지면서 캡티윤의 최광위 개념까지 확장돼 왔다. 세 기준으로 볼 때 우리 외환보유고는 직접 갖고 있는 제1선 외화만 따지더라도 문제가 없다.
다른 신흥국이면 몰라도 우리의 경우 적정외환보유고 논쟁에 편승해 급부상하고 있는 '제2의 외환위기설'은 전형적인 ‘인포데믹 즉 잘못된 정보에 해당한다. 나라 안팎으로 극도로 혼란할 때 새 대통령이 탄생되는 만큼 이제는 모두가 '포로 보노 피블릭코(공공선) 정신'를 발휘해 합심해서 대처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