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상의 7.6배 가입"...'청년희망적금' 은행도 당혹

입력 2022-03-06 07:21
수정 2022-03-06 07:48


정부가 설계한 청년희망적금 상품이 당초 예상한 수요를 웃돌자 모든 신청자에게 가입을 허용한 결과 열흘 사이 290만명이 가입했다. 이는 정부가 당초 예상한 수요의 약 8배로, 추가 비용 등 수습의 부담은 사실상 은행들이 떠안게 됐다.

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부산·대구·광주·전북·제주은행 비대면(앱)·대면(창구) 창구를 통해 지난달 21∼25일, 28일∼3월 4일 2주에 걸쳐 10일간 청년희망적금 신청을 받은 결과 약 290만명이 가입을 마쳤다.

가입했다가 이 기간 바로 해지한 계좌를 제외하고 4일 오후 6시 마감 시한 이후까지 살아남은 계좌(활동계좌)만 집계한 수치다.

이는 정부가 당초 예상한 가입 지원자(약 38만명)의 7.6배에 이르는 규모다.

정부가 저축장려금, 비과세 혜택 등을 지원하는 이 적금이 사실상 일반 과세형 적금 상품 기준으로 10% 안팎의 금리를 받는 것과 비슷하다고 알려지면서, 이미 '미리보기' 단계에서 5대 은행에서만 약 200만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가입 자격을 조회하는 등 과열 조짐이 나타났다.

특히 요일별 '출생연도 5부제' 방식으로 첫 가입 신청이 시작된 지난달 21일에는 쇄도하는 신청으로 일부 은행의 앱에서 수 시간의 접속 지연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신청 마감일인 지난 4일까지 접수를 마친 신청자 가운데 가입 요건을 충족한 경우 모두 적금에 가입할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했다. 아울러 2021년 중 최초로 소득이 발생한 청년을 배려해 오는 7월께 청년희망적금 가입을 재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가입자가 정부 예측 인원의 거의 8배라는 점에서 설익은 정책을 너무 서둘러 추진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는 일단 부동산·주식 등 자산시장 부진에 따라 예·적금 등에 돈이 몰리는 자금 흐름 변화를 '수요 예측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들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청년희망적금 인기와 관련해 "작년에는 (투자의 관심이) 부동산, 주식 시장 등에 쏠려 있는 상황이었지만, 최근 금융시장 여건이 변하면서 이런 쪽(은행 예·적금)으로 관심이 다시 돌아오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측이 빗나간 것뿐 아니라, 대상 확대 등 정부의 수습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고 일방적이었다는 게 은행권의 주장이다. 예측치와의 격차가 너무 커서인지, 은행과 자격 조회 시스템을 담당한 서민금융진흥원은 당국 눈치를 살피며 일별 신청자 수 등도 공개하지 않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2월 21일 오전 가입 신청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예측 수요(38만명)에 따라 당국이 각 은행에 당일 가입 할당량을 배분해주면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방식으로 알고 있었다"며 "하지만 약 200만명의 미리보기 인원 규모가 알려지고 21일 오전 시작하자마자 일부 은행 앱에 접속이 어려울 정도로 신청이 몰리자 '일단 오늘 신청 건은 다 받으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청 이틀째(2월 22일) 당국이 '3월 4일까지 요건에 맞는 신청자는 모두 가입된다'며 대상 확대를 발표했지만, 은행권과 구체적으로 협의하거나 동의를 얻는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만큼 정부도 신청 폭주에 당황해 서둘러 대상 확대를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대상 확대에 완벽하게 동의하는 절차가 중요한 것은, 청년희망적금이 은행 입장에서 팔수록 손해가 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청년희망적금의 금리는 기본금리 5.0%에 은행별로 최대 1.0%포인트(p)의 우대금리를 더해 결정된다. 따라서 최저 5.0%, 최고 6.0%의 금리가 적용되는데, 이는 현재 아무리 높아야 3% 안팎인 일반 예·적금 금리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 대출금리가 평균 약 4% 정도인데, 적금에 6.0%의 금리를 주고 조달하면 당연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사회공헌 차원에서 청년희망적금 사업 참여를 결정한 것인데, 가입 인원이 이렇게 당초 계획보다 많이 늘어나면 은행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은행들이 가입자 급증의 부담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고, 생색은 정부가 내는 셈"이라며 "하지만 은행권은 공익사업이라는 점, 가입 대상인 젊은 고객(19∼34세)을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계속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