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대형은행 크레디트 스위스에 비밀계좌가 있는 '비밀고객'의 명단이 대거 드러났다고 영국 가디언과 뉴욕타임스(NYT), AFP·dpa 통신 등 해외언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명단은 NYT와 가디언, 프랑스 르 몽드,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 등 세계 46개 매체가 참여한 '조직범죄·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가 내부 고발자가 유출한 자료를 분석하면서 드러났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3만여 명이 크레디트 스위스 비밀계좌로 운용한 금액이 1천억 달러(약 120조원)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과거와 현재의 비밀고객 중에는 인신매매범, 전범 등 범죄자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국가수반과 장관, 정보기관장, 유력 정치인, 주교 등이 포함됐다.
이들의 국적은 주로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남아메리카였고 관련 계좌의 1% 정도만 서유럽 고객으로 나타났다.
1년 전 자료를 처음 입수해 공동 취재한 쥐트도이체차이퉁은 크레디트 스위스가 오래전 자사 이용자 중 범죄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범죄자들이 계좌를 개설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 자료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자료를 제공한 익명의 크레디트 스위스 내부 인사는 "스위스 은행들의 비밀 보장은 부도덕하다"며 "금융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는 구실은 스위스 은행들이 탈세자와 협력하는 부끄러운 일을 은폐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 자료에는 1940년대부터 2020년 말까지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에 개설된 계좌 1만8천여 개의 소유자인 3만7천여 명의 개인과 기업 정보가 포함됐고, 스위스 주요 은행에서 유출된 자료로는 역대 최대규모라고 OCCRP는 전했다.
르 몽드는 이번 탐사보도는 크레디트 스위스가 수십 년 동안 범죄·부패와 관련된 자금을 보유함으로써 국제 은행 규정을 무시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이 보도를 강력히 부인하면서 "이 보도는 맥락에서 벗어나게 발췌된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정보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보도에 인용된 계좌 중 일부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있고, 전체의 60%가 2015년 이전에 폐쇄되는 등 전체의 90%가 이미 폐쇄됐다"며 "이 문제를 계속 분석해서 필요할 경우 추가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