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통화지표 개발에 열 올리는 각국 중앙은행…증시에는 어떤 영향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2-02-14 11:25


흔히 국가경제에 있어서 돈의 역할을 인체에서 혈액의 역할에 비유되기도 한다. 문제는 돈이 경제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할지라도 최근처럼 경제규모에 비해 너무 많이 풀릴 경우 그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적은 경우 금리가 상승하고 경제활동이 위축된다.

이 때문에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시중에 돈을 적정수준으로 공급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에는 더 그렇다. 바로 통화지표는 시중에 돈이 얼마나 풀려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서 통화정책을 수립?집행하는데 기초자료가 되고 통화정책 효율성이 판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특정국의 통화지표를 편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돈으로 보느냐 하는 통화 개념부터 결정하는 것이 최우선순위다. 흔히 통화라고 하면 지폐나 동전과 같은 현금만을 떠올리기 쉬우나 각종 금융기관에 예치한 예금들도 언제든지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통화에 포함시킬 수 있다.

즉, 통화는 현금 이외에 여러 가지 화폐기능을 지닌 금융상품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새로운 금융상품이 출현되거나 금융제도가 급변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이에 맞는 통화지표를 개발하는 과제는 중앙은행의 가장 큰 역할중의 하나다. 전통적인 중앙은행 목표인 물가안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금융혁신의 진전과 금융기관의 겸업화로 금융기관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점을 주목해 금융기관 중심이 아니라 유동성을 중심으로 한 통화지표의 작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통화금융통계 매뉴얼(2000)’을 발간하고 각국에 이에 따른 통계편제를 권고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1년부터 통화(구M1) 및 총통화(구M2) 지표를 공식 편제하기 시작한 이래 본원통화, M3, 유동성(L) 등의 지표를 추가로 편제해 왔다. 이 지표는 시중의 유동성보다는 금융기관의 법적 지위를 기준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통화지표와 최종목표변수 사이의 안정적 관계를 저하시켜 정책지표로서의 유용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새 통화지표에서 개별 금융자산을 협의 또는 광의의 통화지표에 포함시킬지의 여부는 원칙적으로 당해 금융자산의 유동성 정도를 판단기준으로 하고 있다. 협의통화인 신M1은 통화의 지급결제기능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광의통화인 신M2는 지급결제기능에 가치저장수단으로서의 기능까지 포함시키되 거시경제변수와의 관계, 중앙은행의 통제가능성 등 통화지표가 갖춰야 할 실증적 요건 등을 감안한 것이 특징이다.

가장 최근에 편제된 최광의 유동성지표(L : Liquidity Aggregates)는 IMF의 ‘통화금융통계매뉴얼’에서 통화지표의 하나로 예시하고 있는 지표로서 한 나라의 경제가 보유하고 있는 전체 유동성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한 통화지표다. 광의통화(M2)는 물론 M3에 비해 금융자산이나 금융자산 발행부문의 포괄범위가 훨씬 더 넓다.

새로운 통화지표는 금융상품을 유동성 기준으로 분류?편제되기 때문에 통화의 기본정의에 충실한 지표일 뿐만 아니라 조사표 작성단계의 전산화 추진 등을 통해 속보성을 높임으로써 통화지표의 시의성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신M1은 제2금융권의 단기상품을 포괄함으로써 그동안 지표의 활용도가 낮았던 기존 M1을 대체해 단기금융시장의 유동성 파악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신M2는 기존 M2가 비은행금융기관의 상품을 제외하고 있어 지적돼 왔던 금융권간 자금이동에 따른 왜곡현상을 시정할 수 있다.

동시에 M3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속보성 문제도 개선함으로써 실물경기변동에 대응한 통화정책 잣대로서의 역할이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새 통화지표의 적합성 검증결과를 보더라도 안정성 등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거시경제모형을 이용한 경제분석과 예측의 정확성 제고에도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온라인과 모바일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최근 들어서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각종 가상화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각종 포인트. 마일리지, 쿠폰, 지역공동화폐 등 대안화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케네스 로코프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예상한 대로 현찰(법화?legal tender)이 필요 없는 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개인의 화폐생활이 변함에 따라 통화정책 여건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종전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대안화폐 확산’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본원통화의 대체문제다. 갈수록 본원통화의 상당부분을 대안화폐가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 보면 본원통화 축소에 따른 화폐발행차익(seigniorage)의 감소를 의미한다. 특히 화폐발행차익 감소는 통화정책 수행비용의 재정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켜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둘째,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대안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와 대안화폐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중앙은행 이외의 다른 주체들이 대안화폐를 발행할 경우 현금보유 성향의 저하로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크게 약화된다. 또 대안화폐가 현금통화와 결제성 예금까지 대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 경우 발행주체와 관계없이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능력은 심할 경우 무력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셋째, 대안화폐의 발달로 통화승수와 통화유통속도가 커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통화승수이론에 따르면 통화량은 본원통화와 통화승수에 의해 결정되고 통화승수는 현금보유비율과 지급준비율에 따라 좌우된다. 이 이론대로라면 대안화폐가 현금통화를 대체하면 통화승수는 커지게 된다.

넷째, 대안화폐의 발달은 여러 각도에서 통화정책의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통화공급 조절→금리 변화→총수요 증감→성장률 혹은 물가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 대안화폐의 발달로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서 위험 헤지가 수월해짐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금리변화에 덜 민감해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

대안화폐에 따른 본질적인 문제와 함께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중앙은행의 경우 예측력을 강화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지금처럼 다른 전망기관보다 늦게 그것도 예측력이 월등히 높지 않고서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거나 선제적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일은 어렵기 때문이다. 예측모델 재설정, 시계열 일관성 유지, 정성적 평가 등에 고민도 있어야 한다.

특히 신뢰를 확보하는 과제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금리와 총수요 간 민감도를 끌어 올리는 데도 중요하다. 대안화폐 확산 등으로 갈수록 불확실하고 길어지는 통화정책 경로에서 중앙은행 총재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말을 자주 바꾸거나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예측치를 언급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통화정책 추진 과정에서 흐트러진 정책수단과 중간조작, 최종목표 간 인과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테면 중앙은행 입장에서 성장과 물가 간 우선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금리조작이냐 통화량 변경이냐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추세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서는 중앙은행 목표, 통화정책 관할범위, 적정금리 산출방식, 감독범위 등도 재설정해야 한다.

대안화폐 확산에 따른 새로운 환경에 맞게 새로운 통화지표를 개발해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 등을 정확히 추정해야 한다. 갈수록 가속력이 붙을 대안화폐 발행에 대한 규제와 위조지폐 방지 등을 통해 ‘폐지 혹은 무용론’까지 불고 있는 현찰(법화)의 위상도 강화해야 할 때다. 각종 가중치와 산출방식 현실화를 골자로 한 통계개편 작업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모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화돼야 한다. 고유권한인 금리결정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 임직원들도 게을러져서는 안된다. 대안화폐 발달 등에 따라 우려되는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정책수단을 개발하는데 밤낮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관행대로 통화정책을 추진했다간 효과는 고사하고 독립성과 신뢰성에 손상을 받으면서 통화정책 효율성까지 떨어질 수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