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 이후 원·달러 환율은 1,300원(혹은 달러당 1,500원) 이상 급등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난해 초까지 달러당 200원 이상 큰 폭으로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제와 통화정책에 커다란 큰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들어서는 백신 보급을 계기로 코로나로 인한 봉쇄 체제가 풀리면서 원·달러 환율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추세다. 작년 초 달러당 1,080원대 초반까지 떨어졌던 원·달러 환율이 올해 들어서는 빅 피겨(big figure)를 넘어서 1,200원대에 진입했다. 코로나 이후 환율 예측을 잘했던 기업과 투자자는 커다란 기회, 실패한 기업은 커다란 손실이 발생해 명암이 엇갈렸다.
올해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어떻게 출구전략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 직후처럼 위기 국면일 때는 돈을 많이 풀고 최근처럼 극복되기 시작하면 돈의 공급을 줄여나가는, 즉 테이퍼링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2021년 4월 인플레이션 쇼크 이후 말이 많았던 ‘테이퍼링’이 같은 해 11월 Fed 회의에서 가닥이 잡혔다. 궁금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위기 발생 5년 만에 추진됐던 테이퍼링을 이번에는 코로나 사태 2년 만에 추진하는 점이다. 모든 금융위기는 유동성 위기, 시스템 위기, 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극복해야 한다.
‘위기 극복 3단계 이론’으로 볼 때 금융위기는 시스템 위기에서 비롯돼 사전에 예고됐기 때문에 초기 충격이 적은 반면 시스템 위기를 극복해야 실물경기 회복이 가능해져 위기가 극복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금융위기를 맞아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코로나 사태 때에 비해 돈이 적게 풀렸는 데도 2013년에 가서야 밴 버냉키 당시 Fed의장이 테이퍼링이 처음 언급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에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에 해당하는 코로나 사태는 초기 충격이 큰 것이 특징이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모든 사람이 공포에 휩싸이고, 세계 주가가 2020년 2월 이후 한 달 만에 반토막이 날 정도로 순식간에 폭락한 것은 하이먼 민스키 리스크 이론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nobody knows’, 즉 아무도 모르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를 당하자 Fed는 2020년 3월 임시회의 이후 1913년 설립 이래 가보지 않는 길을 걸어 왔다.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매입 대상을 가라지 않고 무제한 달러화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선언했다.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인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스템 문제에 비롯된 종전의 위기와 달리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사태는 백신만 보급되면 세계 경제가 ‘절연’에서 ‘연계’ 체제로 빠르게 이행됨에 따라 풀린 돈을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장률이 높아져 자산 거품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불거진다. 실제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테이퍼링이 금융위기 때와 달리 앞당겨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원·달러 환율을 전망하는 데에 있어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변수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다. 3차 대전(헨리 키신저), 2차 냉전(니얼 퍼거슨)이란 경고가 나올 정도로 양국 간 패권경쟁이 날로 악화되는 속에 가장 격렬할 것으로 예상됐던 환율 분야는 ‘통화 절상’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외형상으로는 평온하다.
‘위안화 절하’ 문제를 놓고 환율전쟁을 불사해 왔던 종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양국이 모두 인플레이션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기지로 중국이 가장 중시하는 생산자물가상승률(PPI)와 소비시장으로 가장 중시하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율(CPI)는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양국의 인플레는 경기과열과 같은 총수요 요인보다 세계가치사슬(GVC)과 공급망(GSC) 붕괴에 따른 공급측 요인이 강하다. 공급측 인플레 대책으로 세 감면, 생산성 증대, 사회적 연대를 통한 임금상승 억제 등이 있으나 최근처럼 외부 충격에 따라 수입물가가 상승할 때는 자국통화 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 지금 당장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이다.
위안화와 달러화 가치 상승은 양국의 경제정책과 맞물려 의외로 오래갈 가능성도 높다. 중국은 내수 위주의 ‘쌍순환 전략’과 ‘홍색 공급망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공식인구 14억명에다 1인당 소득마저 1만 달러가 넘어 내수시장 구매력도 충분하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미국과 충돌을 막으면서 내수시장을 키워 경제 독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도 해외에 나간 기업을 불러들이는 ‘리쇼오링 정책’과 반도체 등 주요 핵심부품과 원자재의 ‘굴기 정책’, 그리고 내년부터 본격화될 ‘사회적 인프라 정책’을 추진하는 데 강달러가 유리하다. 중국보다 유리한 것은 투자자산에 대한 신뢰가 높은 여건에는 캐리 자금마저 유입돼 자산 효과로 성장률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Fed의 출구전략과 함께 중국과 미국이 위안화와 달러화 강세를 동시에 용인하면 원·달러 환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국이다. 조 바이든 정부의 경제 콘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수입물가 안정과 날로 높아지는 중하위 계층의 경제고통지수(실업률+소비자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달러 강세를 용인한다는 뜻을 비춰왔다.
수출 주도로 압축성장한 우리로서는 양대 경제대국의 자국통화 강세 용인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원화 약세에 따라 수출을 도모할 경우 우려되는 환율 조작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위드 코로나 방역 체제로 돌아선 이후에도 내수 기여도가 크게 제고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수출이 받쳐줘야 성장률 급락을 막을 수 있다.
외국인 자금이탈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도 너무 우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처럼 신흥국(MSCI 기준) 입장에서는 외자 이탈에 따른 방지책은 금리 인상보다 외화를 충분히 쌓는 일이다. 우리의 경우 직접 갖고 있는 제1선 외화와 통화스와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갖고 있는 제2선 외화까지 포함할 경우 5,500억달러가 넘어 가장 넓은 의미의 캡티윤 방식으로 추정된 적정수준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인플레 부담이 높아질 가능성이다.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가야 할 내수 육성에도 도움이 안된다. 하지만 모든 정책은 양면성을 갖는다. 지금으로서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200원선 이상으로 올라가더라도 제2의 외환위기 등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 때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