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으로 황폐해진 지구, 달 한가운데 버려진 연구기지, 미지의 존재가 가해오는 공격.
미스터리로 점철된 이야기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우주에서 한 꺼풀씩 실마리를 풀어내며 극강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그동안 한국 드라마가 다루지 않았던 공간인 우주를 메인 무대로 삼는다. 한국의 첫 우주 SF 시리즈다.
최항용 감독의 동명 단편 영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물 부족으로 인류의 미래가 위협을 받는 가까운 미래, 특수 임무를 받고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주 생물학자 송지안(배두나 분)과 탐사 대장 한윤재(공유), 수석 엔지니어 류태석(이준), 의사 홍닥(김선영) 등은 대한민국 최초의 달 탐사기지였지만 5년 전 영구 폐쇄된 발해기지로 향한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발해기지에 남겨진 중요 샘플을 회수해 오는 것. 하지만 송지안은 샘플 회수보다는 과거 발해기지에서 벌어진 사고의 원인을 찾는 데 집착하고, 임무 수행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주의자인 한윤재와 사사건건이 부딪치며 긴장감을 높인다.
드라마는 SF 미스터리 장르에 충실하다. 우주라는 생경한 공간으로 흥미를 끌어올리고, 발해기지에 남겨진 의문의 단서들을 하나씩 드러내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발해기지에서는 정부 발표와 달리 5년 전 사고 때 있었던 방사선 노출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대신 익사한 듯 보이는 시체들이 발견된다. 사고 당시 발해기지 근무 요원은 전원 사망했다고 보고됐는데, 기지 안에서는 생체신호가 잡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급기야 탐사대원들은 미지의 존재에 의해 한 명씩 공격을 받게 되고, 이들이 죽기 전 보인 증상은 두 눈을 의심하리만큼 괴이하다. 입과 귀, 코 등 신체의 구멍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데, 지구가 겪고 있는 물 부족 위기와의 연관성을 시사하며 궁금증을 자극한다.
총 8부작으로 제작된 드라마는 임무를 수행하는 대원들의 이야기를 표면에 내세우면서, 생존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넌지시 묻는다.
또 '오징어 게임'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관통하는 사회 문제도 들춰낸다.
'오징어 게임'이 낙오를 용납하지 않는 무한 경쟁사회를 생존게임 형식으로 그려냈듯 '고요의 바다'는 인류 생존을 위한 국가의 통제와 은폐, 물 부족이라는 환경의 이상징후, 등급에 따라 분배받는 물의 양을 정하는 계급 사회 등을 이야기에 녹였다.
무엇보다 '고요의 바다'는 우주 배경의 영상을 수준급의 기술력으로 매끄럽게 연출해냈다.
올해 2월 넷플릭스에 단독 공개된 한국 최초의 우주 영화 '승리호'가 입증했듯, 우주를 구현하는 한국의 컴퓨터그래픽(CG), 시각특수효과(VFX)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고요의 바다' 속 회색빛 달의 디테일한 지형을 드러내는 명암 대비와 이곳의 절벽 끝에 위태롭게 자리한 연구기지의 비밀스러운 분위기는 한순간에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극 초반 달에 불시착하는 우주선은 우주 영화가 주는 특유의 스펙타클한 짜릿함을 안겨주며 SF 시리즈에 거는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킨다. 중력이 없거나 낮은 우주 공간 속 배우들의 움직임도 실제 달에 착륙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현실감 높게 묘사됐다. '월면토'로 불리는 달에 쌓인 먼지의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담아냈다.
드라마는 배우 정우성이 제작한 작품이란 점과 배두나와 공유라는 두 스타의 출연으로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고, 넷플릭스가 내놓은 한국의 우주 SF 시리즈라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이목이 쏠린다. '오징어 게임'의 뒤를 이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K-드라마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기대가 큰 상황이다.
글로벌 인기를 차치하고서라도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촘촘한 짜임새와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을 현실감 있게 구현해낸 연출만으로도 새로운 장르의 한국 드라마 탄생을 알린 작품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