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금융기관들의 연말 인사 시즌이 돌아왔다. 민간 금융사들은 코로나19 확산과 핀테크사의 등장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새 전략을 짜기 위해 발빠른 세대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실제 시중은행에서는 50대 은행장이 나오는가 하면, 삼성 금융계열사는 전무 직급을 없애 40대의 '젊은 인재'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관(官)피아 논란'이 일고 있는 곳, 바로 금융협회다. 각 금융업권별로 존재하는 금융협회는 업계의 주요 정책과제를 다루고, 금융사들의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그 수장의 중요성 역시 크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내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의 뒤를 이을 차기 회장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다. 당장 한 달 남짓한 기간밖에 남지 않은 만큼, 벌써부터 차기 회장직을 노리는 후보군들의 물밑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차기 저축은행중앙회장직의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들은 관료 출신이다. 현재 이해선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과 정완규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 홍영만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들 모두 금융위원회 출신이다.
그간 민간 금융사 출신의 수많은 후보들도 회장직에 도전한 바 있지만, 대부분 관료 출신들에게 고배를 마셨다. 실제로 역대 17명의 저축은행중앙회장 중 이순우 전 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료 출신이었다. '관 아니면 안 된다'는 뒷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각 협회장들은 회원사들의 투표를 거쳐 선출된다. 저축은행중앙회 역시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꾸려지면 후보등록 과정을 거치고, 79개 저축은행들이 '1사1표' 방식으로 회장을 선출한다.
관료 출신의 수장이 금융사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더욱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업계의 기대감도 적지 않다. 금융업은 규제산업인 만큼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축은행중앙회의 경우 지난 20여년간 관료출신들이 잇따랐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은 회장은 찾기 힘들다. '당연히 관료 출신이 회장이 된다'는 업계간 암묵적인 합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더 정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은 자리길래 관료출신들 사이에서도 서로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후배간 경쟁을 벌이는 것일까. 저축은행중앙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연봉은 성과급을 포함해 약 5억 원에 달한다. 3년 임기를 마칠 경우 약 15억 원을 받게 된다.
저축은행업계는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이후 소비자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수년간 노력해오고 있다. '고금리 이자장사'라는 프레임을 벗기 위해 중금리 시장을 개척하고, 핀테크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디지털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저축은행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 상황. 업계 차원에서도 새 변화를 위해 넘어야 할 파고가 녹록치 않다. 이 때문에 이미 업계 곳곳에서는 중앙회장직이 더 이상 관료 출신들의 예우를 책임지는 자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금융권, 저축은행 역시 업계의 역할을 재정비하고 새 비전을 제시할 적임자를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