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향연이 끝나고 반란이 시작된다’. 8년 전 '머니 볼'의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가 ‘빚의 복수(Revenge of Debt) 시대가 들이닥칠 것’을 예고한 문구다. 전 국민에게 지원금 지급문제를 놓고 최근 다시 벌어지는 국가채무 논쟁이 날로 격화되는 상황에서 그 어느 국가보다 빚이 많은 우리 국민에게 가장 가슴 깊게 파고드는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경고다.
2009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극복’과 ‘실물경기 회복’이라는 미명 아래 금리를 제로 수준(유럽과 일본은 마이너스금리)까지 내리고 돈을 푸는 것을 마치 미덕인 것처럼 합리화했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경제 주체는 ‘저리의 빚’이라는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해 왔다. 그 기간도 10년 이상 길어져 빚의 무서움도 잊혀져갔다.
세계 빚(국가+민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빚은 우리 돈으로 20경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국내총생산(GDP)대비 250%로 임계치인 200%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세계 인구 74억 명을 기준으로 1인당 빚을 계산한다면 3천 500만원에 달한다.
금융위기 이후 급증한 달러 부채 만기가 2018년 하반기를 시작으로 올해부터 집중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부분 달러 자금을 10년 만기로 조달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공사(IIF),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따르면 달러 부채 만기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평균 4천억 달러 이상이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부채 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부도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원금을 상환하거나 신규로 달러 부채를 조달해 기존의 것을 상환하는 ‘롤오버(rollover)’가 잘돼야 한다. 월가에서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수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지난 2월말까지 달러 부채를 롤오버 하는데 별다른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리스크 이론에서 가장 두려운 것으로 평가하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위험인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자 달러 부채가 많고 국가 신인도가 낮은 신흥국부터 신용부도 스와프(CDS) 프레미엄이 뛰기 시작했다. CDS 프레미엄은 특정국이 부도 우려가 제기될 때 가장 먼저 반영되는 지표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자 CDS 프레미엄이 급등하는 현상이 다른 국가에게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각국이 달러 유동성 확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가릴 것 없이 처분했다.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 가격이 떨이지면 금과 같은 안전자산 가격이 오르는 관행이 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달러인덱스가 오르고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것은 종전처럼 머큐리나 마스 요인보다 ‘달러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리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다. 달러 투기 세력도 가세되고 있다. 국제외환시장에서도 코로나 사태 진전 여부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 빚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었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의 만능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그 대신 경제정책의 주안점이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재정지출 요인도 가세되고 있다.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3년 전 출범했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재정을 방면하게 운용해오던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사태에 따른 뜻하지 않는 재정지출 요인이 가세되면서 재정적자가 2011년에 이어 ‘또다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유럽도 코로나 사태를 낮아 양적완화를 재추진하면서 재정정책과 분담시켜 나가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일본도 ‘금융완화(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이론적 근거 제시)’ 중심의 1단계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2단계 ’재정정책(혼다 에쓰로 영국 대사가 이론적 근거 제시)‘으로 이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재정지출이 늘어만다면 ‘재정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늘어날 재정적자를 국채로 메운다면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국채금리가 올라가 빚 상환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부채의 악순환’이자 ‘빚의 복수’의 출발점이다.
IMF를 비롯한 예측기관이 빚 부담을 연착시키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에 복합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기준금리 등 정책수단이 제 자리에 복귀되지 않은 여건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경제주체의 빚 상환능력과 가처분소득이 더 떨어지고 정책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밝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나라는 가계 빚이 많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민간부채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대비 민간부채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벗어난 정도)이 3.1% 포인트다. 주의(2%p 미만 ’보통‘, 2∼10%p ’주의‘, 10%p 이상 ’경고‘) 단계다.
단순히 빚이 많다고 반드시 무서운 것은 아니다. 빚 상환 능력, 즉 소득이 받쳐준다면 저금리 시대에는 빚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 나라의 경기나 개인의 재테크 차원에서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여건에서 임계수준에 도달한 빚을 더 늘려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오히려 빚을 줄이는 것이 우선순위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미 빚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의욕만 앞세워 과도하게 빚을 줄이면 가득이나 안 좋은 경기를 더 침체시킬 수 있다. 2018년 11월말 ‘대내외 불균형 시정’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들어 금리를 올린 것이 그 이후 이자부담 증가로 우리 경제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끌어 내렸다.
그런 만큼 가계 빚 대책을 세울 때 가처분소득(총소득-이자 등 각종 비용)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가계 빚을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출 경우 이자 경감분보다 소비성향이 높은 자산소득이 감소해 경기를 둔화시킬 우려가 높다. 환금성의 높은 아파트의 경우 역자산 효과계수는 ‘0.23(아파트값 1% 하락 때 소비 0.23% 감소)’으로 높게 나온다.
가계부채에 이어 최근에는 코로나 지원금 지급 문제를 놓고 국가채무 논쟁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재정은 민간과 다르다. ‘양입제출(量入制出)’을 지향하는 민간은 흑자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양출제입(量出制入)’을 전제로 하는 재정은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채무가 발생해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면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덜 걷고 재정지출도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에서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재정건전성은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율로 평가한다. 선진국은 100%, 신흥국은 70% 이내면 재정이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선진국은 신흥국보다 국가 신뢰도가 높아 재정 운영에 있어서 여유가 많다는 의미다. 일본처럼 최종 대부자 역할이 저축성이 높은 국민에게 있을 때는 국가채무 비율이 250%에 달해도 국가 부도가 날 가능성은 적다.
특정국의 재정이 건전한 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가채무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가채무는 포함대상과 채무성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 협의 개념은 중앙과 지방 정부의 현시적 채무, 광의 개념은 협의 개념에다 공기업의 현시적 채무, 최광의 개념은 광의 개념에도 준정부 기관 그리고 모든 기관의 묵시적 채무까지 포함된다.
한국은 세 가지 기준에 따라 국가채무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특징이다. 협의 개념으로는 45% 내외, 광의 개념으로는 75% 내외, 최광의 개념으로는 145% 내외다. “재정이 건전하다”, “국가부도가 곧 닥친다”라는 극과 극의 주장이 함께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글로벌 투자은행과 국제평가사 한국 포스트의 시각이다.
한국은 유난히 논쟁이 많은 나라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국가채무, 외환위기, 화폐개혁 등 고질적인 3대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종전과 다른 것은 3대 논쟁의 출발점이 정책당국과 집권당인 민주당 후보라는 점도 눈에 띤다. 과연 국민은 어떻게 보겠는가?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