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우 대출 중단"...강경한 입장에 '전전긍긍'

입력 2021-09-26 06:55


국내 은행 가운데 가계대출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의 가계대출이 최근 급증하면서 당국과 다른 은행들이 KB국민은행의 대응 방안을 주시하고 있다.

결국 KB국민은행은 29일 이례적으로 전세자금대출과 집단대출의 한도까지 대폭 축소하기로 했지만, 만약 이후로도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으면 NH농협처럼 일부 대출 창구를 아예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당국은 KB국민은행의 규제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운데, 하나은행과 NH농협 등도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와 금리 인상 등의 추가 대출 규제를 서두르고 있다.

◇ KB 가계대출 연 증가율, 연휴 낀 1주일만에 4.15→4.31%

26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3일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168조8천297조원으로 작년말(161조8천557억원)보다 4.31% 불었다.

아직 당국이 제시한 증가율 목표(5∼6%)를 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KB국민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지난 7월 말 2.58%에 불과했다. 하지만 8월 말 3.62%로 한 달 만에 1%포인트(p) 이상 뛰더니, 불과 약 보름 사이 0.53%포인트 또 올라 이달 17일 4.15%에 이르렀다.

추석 연휴 이후에도 다시 0.16%포인트 높아져 23일 4.31%로 집계됐다. 연휴 기간을 빼면 17일 이후 사실상 영업일은 23일 단 하루뿐이었기 때문에, KB국민은행도 최근 증가 속도를 심각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다음 달께 NH농협은행, 하나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의 가계대출 연 증가율도 5%를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출 종류별 증가율(작년말 대비)을 보면, 특히 전세자금대출(잔액 25조3천949억원)이 18.80%로 거의 20%에 치닫고 있다.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전체 주택담보대출(121조2천992억원)이 4.03%, 신용대출(37조7천825억원)도 올해 들어서만 6.03% 증가했다.

◇ 29일부터 전셋값 인상분만 대출…"증가세 안 꺾이면 대출 중단 불가피"

이에 따라 KB국민은행은 오는 29일부터 가계대출 한도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대표적 '실수요' 대출로 분류되는 전세자금대출과 집단대출의 한도 축소다.

우선 전세자금대출의 한도는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내'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임차보증금이 최초 4억원에서 6억원으로 2억원 오른 경우, 지금까지 기존 전세자금대출이 없는 세입자는 임차보증금(6억원)의 80%인 4억8천만원까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9일부터는 임차보증금 증액분인 2억원을 넘는 대출이 불가능하다.

집단대출 중 입주 잔금대출의 담보 기준도 'KB시세 또는 감정가액'에서 '분양가격, KB시세, 감정가액 중 최저금액'으로 바뀐다.

지금까지는 잔금대출 한도를 산정할 때 대부분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등이 적용됐기 때문에,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여유있게 잔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세 종류 가격 가운데 최저 가격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대부분 분양가격을 기준으로 잔금대출 한도가 상당 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쉽게 말해 분양가가 5억원인 아파트의 현 시세가 10억원으로 뛴 경우, 이제 10억원이 아닌 기존 분양가 5억원을 기준으로 잔금 대출의 한도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주택담보대출에서는 모기지신용보험(MCI), 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이 제한된다. MCI·MCG는 주택담보대출과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으로, 이 보험에 가입한 차주(돈을 빌리는 사람)는 LTV만큼 모두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보험이 없으면 소액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하다.

KB국민은행은 MCI, MCG 가입 제한으로 서울 지역 아파트의 경우 5천만원의 대출 한도 축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역별 주택우선변제보증금 차이에 따라 한도 축소폭은 ▲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4천300만원 ▲ 광역시 2천300만원 ▲ 이외 지역 2천만원 등으로 예상된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조치에 대해 "가계대출이 너무 빨리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불기피한 조치"라며 "전세자금대출 등 실수요자들에는 영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짜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29일 이후에도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떨어지지 않으면 남은 방법은 일부 대출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당국 "KB 같은 규제 퍼져야"…타 은행은 '수요 몰릴라' 걱정

은행들에 가계대출 관리를 줄곧 압박해온 금융당국은 이런 KB국민은행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앞서 16일부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운용 기준을 기존 '100∼120% 이내'에서 '70% 이내'로 강화한데 이어 29일 대대적 한도 축소에 나서자 '자율적 대출 규제'의 모범 사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더구나 전셋값 증액분까지만 대출해주거나 잔금 대출의 기준을 기존 분양가로 낮춰 '과잉 또는 잉여' 대출의 빈틈을 막았다는 점에서, '실수요자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최대한 대출을 억제하는' 당국의 추가 대출 규제 방향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KB(규제)가 마음에 들더라. 이런 게(자율적 규제) 퍼져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은행들 입장에서는 KB국민은행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가 또 다른 압박이 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의 대출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로 (당행의) 대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신 담당 부서에서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다른 은행들도 속속 추가 대출 규제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다음달 1일부터 모기지신용보험(MCI), 모기지신용보증(MCG) 일부 대출 상품의 취급을 한시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역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한 조치다.

앞서 25일에는 NH농협은행이 신용대출 상품 중 'NH직장인대출V'의 우대금리를 0.2%포인트 낮췄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