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내렸다는 정부, 또 보고 싶은 데이터만 [경제뷰포인트]

입력 2021-09-17 17:44
수정 2021-09-17 17:44
<앵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부는 추석 성수품 물량 공급을 늘려 가격이 안정세를 찾았다고 하지만 추석 장을 보러 나온 소비자들은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강미선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기자>

서울 마포구의 한 전통시장.

평일 낮 시간대지만 추석 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정부에서는 추석 성수품 공급을 지난해보다 25% 늘리며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차명옥/주부: 물가 엄청 비싸요. 제가 느끼기에는 물가가 다 올라와 있는 것 같아요.]

[김향자/주부: 고기 같은 것도 오르고 생선도 오르고 과일도 많이 오르고 많이 올랐더라고요. (내린 것은 느껴지지 않으세요?) 싸다고 생각 안해 봤어요.]

과일을 파는 상인들 역시 가격이 안정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전영출/과일 상인: 비싸다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사과 배가 안정이 되기는 됐는데 배는 좀 됐는데 사과가 비싸요.]

계란과 고기 가격도 지난해와 비교해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은 26만 1천 원으로 지난해보다 2만 원가량 높아졌습니다.

11조 원 규모의 재난지원금 지급과 연휴 임박에 따라 수요가 계속 몰리고 있어 시민들의 체감물가는 여전히 높은 모습입니다.

<앵커>

앞서 보신대로 현장에선 물가가 여전히 비싸다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성수품 공급을 확대하면서 물가가 안정세라고 진단했습니다. 체감물가와 괴리가 있는건데 왜 그런지 더 따져보겠습니다. 정부가 오늘 가격이 내려 물가가 안정세라고 자평한 것은 성수품이죠?

<기자>

네. 추석 차례상에 많이 오르고, 선물로도 쓰이는 품목 16개를 16대 성수품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명절 전에 집중적으로 물가관리를 하고 있는 품목들인데 좀 보면 사과, 배, 밤, 대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조기 등 입니다. 여기에 쌀까지 포함하면 총 17개 품목입니다. 정부는 추석 물가 안정을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17개 품목의 공급량을 늘렸거든요. 작년에는 2주전부터 공급확대를 하던것을 올해는 물가가 심상찮으니까 1주일 앞당겨 풀었고, 공급량도 전년보다 늘렸습니다.이런 정책을 선제적으로 펼친 결과 물가가 내리는 성과를 냈다고 정부가 오늘 자평했습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차관: 8.30일 이후 약 3주간 성수품 확대 공급을 실시하여 쌀과 16대 성수품 중 14개 품목의 가격이 8.30일 대비 하락하였고]

<앵커>

성과를 드러내기 위해 성수품 공급을 확대한 8월 30일을 비교시점으로 삼은 거네요. 아무튼 정부는 17개 품목 가운데 14개 품목의 가격이 내려서 안정세라고 하는데 국민들은 체감을 못하겠다고 하는, 이런 괴리 현상이 나타나는 거네요. 왜 그런가요?

<기자>

우선 평년보다 식탁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른 상황이고요. 또 추석이라고 16대 성수품만 사는건 아니잖아요. 실제 명절을 앞두고 늘 나오는 "올해 차례상 비용은 얼마다" 하는 자료가 있는데, 이 조사는 16개 성수품보다 12개 더 많은 28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기도 합니다. 이런 품목수 차이도 있을 수 있고요. 더 근본적으로는 문제는 정부의 통계가 유리한 자료를 뽑는 이른바 마사지의 흔적도 있다는데 있습니다.

<앵커>

통계 마사지 흔적이요?

<기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부는 16대 성수품에 쌀까지 총 17개 품목 가운데 3개만 가격이 올랐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가격을 살펴보니까 이보다 두배 많은 6개 품목의 가격이 올랐습니다. 국가 공인 물가조사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라는 기관이 있는데, 기재부도 매년 이곳의 자료를 갖다 쓰는데요. 여기서 확인한 결과, 정부의 통계치와 다른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 배추와 무는 20% 안팎으로 크게 뛰었고, 사과는 홍로, 우리나라가 1980년에 개발한 품종이라고 하는데 이 가격도 2.6% 올랐고요. 배 같은 경우도, 9월 초순부터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신고배 10개를 기준으로 해서 가격이 소폭 상승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명태와 마른멸치 가격인데요. aT 통계엔 0.6%와 1.5% 오른걸로 나오는데, 정부는 20.9%와 16% 각각 가격이 내렸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 통계와 aT의 결과값이 서로 다른 겁니다.

<앵커>

이런 차이는 왜 생긴거죠? 집계에 오류가 있었던건가요?

<기자>

네. 집계 오류보다는 조사기관을 바꾼 게 원인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기재부는 농축수산물 가격을 앞서 말씀드린대로 국가 공인 물가조사기관인 aT(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를 기준으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엔 농축산물은 aT 자료를 사용하고, 수산물은 다른 곳의 자료를 인용했습니다. 바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란 곳입니다. 물가관리나 가격 조사를 전담하는 기관은 아니고, 해양.수산.해운.항만.물류 분야 정책 개발을 하는 국책연구기관입니다.

<앵커>

물가 조사와 동떨어져 보이는 곳인데, 왜 여기 자료를 인용한 것일까요?

<기자>

해양수산개발원에 확인해보니 "명절 때마다 수산물 가격 조사를 하진 않았다. 이번 조사는 해양수산부의 요청으로 진행하게 됐다"고 합니다. 올해 추석을 앞두고 진행한 가격조사가 이례적이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 자료를 인용했을까? 16대 성수품 가격을 취합한 기재부 관계자의 발언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한번 들어보시죠.

[기재부 관계자(음성변조): 해수부에서 그쪽 가격 정보가 증감 경향성이 다르고 해서, 자기네들이 자체적으로 의논을 해서 KMI 가격을 쓰는게 좋겠다고...."

<앵커>

해수부가 해양수산개발원 자료를 써달라 요청을 했다는거네요?

<기자>

네. 또 주목할 것은 이 관계자가 말한 가격 증감 경향성이 다르다는 겁니다. aT 가격은 올랐는데, 해양수산개발원 가격은 내리는 경우 등을 말하는 겁니다. 농축수산물은 특성상 크기와 색상 등이 다양하고 저장기간, 기후변화 등에 따라 동일 등급에도 가격이 다를 수 있고, 전통시장이냐, 대형마트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날 수 있거든요. 얼마든지 유리한 가격을 취사선택 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겁니다. 이에대해 농축수산물 가격 조사 업무를 담당하는 농식품부 한 관계자는 "해양수산개발원에서 조사한 가격이 낮아서 사용한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기재부는 이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기자>

기재부는 "올해부터 물가관리를 더 철저하고 면밀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해양수산개발원 자료를 사용하게 됐다"고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정책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보고 싶은 통계만 취사선택해 발표해서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 정부가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는 거죠. 결과는 부동산 정책처럼 이런게 나옵니다. 부동산 가격도 그 당시에 정부 편의대로 엄청 폭등했는데도 불구하고 가격 안정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앵커>

네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