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못 판다" vs "팔 생각 있었나"…경영권 매각 '진실공방' [이슈플러스]

입력 2021-09-13 17:17
수정 2021-09-13 17:17
[홍원식 / 남양유업 회장 :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자 저는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습니다.]

<앵커>

홍원식 회장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남양유업은 순조롭게 매각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홍 회장은 과연 정말로 회사를 팔고 싶었던 걸까요?

산업부 방서후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방 기자, 남양유업 매각과 불발까지의 상황을 먼저 짚어주시죠.

<기자>

앞서 리포트에 나온 것처럼 남양유업은 숱한 논란으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이어져 왔습니다. 재기의 발판이 필요했죠. 사실 회사 이미지가 실추됐을 지언정 남양유업 제품 자체는 크게 하자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들고 나온 카드가 바로 불가리스입니다. 4월이었죠.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는 발표에 소비자도, 시장도 들썩였습니다.

그러나 식약처가 허위·과장 광고라고 남양유업을 고발하면서 이틀만에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이제 남양 제품마저 불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민심은 역대급으로 돌아섰습니다.

결국 5월4일 홍원식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의를 표명한데 이어, 27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오너 일가 지분 53%를 넘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7월30일 경영권 이전을 위한 임시주총이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앵커>

그래도 회사를 매각하는 일인데 굉장히 속전속결로 이뤄진 감이 있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그만큼 불발도 빨랐습니다.

홍 회장 측이 돌연 주총을 9월14일로 연기하고, 한앤코 측도 매도인을 상대로 매각 이행을 촉구하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협상의 시간은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주식매각종결일인 8월31일을 넘기자마자 홍 회장이 한앤코에 계약 해제를 통보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재매각 의지를 밝혔는데, 법원이 한앤코가 낸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양측은 법정 싸움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앵커>

결국 홍 회장이 변심했기 때문인가요?

<기자>

일단은 그렇습니다. 홍 회장이 매각을 위해 어떤 조건을 요구했고, 이를 한앤코가 거부하면서 매각이 결렬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비밀 유지 의무 때문에 이 조건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백미당(외식 브랜드) 분할, 아들 고용 유지, 매각가 재협상 등이 거론됩니다.

백미당은 남양 브랜드 중에 그나마 불매가 덜 되는 디저트 브랜드거든요. 저출산때문에 우유와 분유에서 고전하고 있는 남양으로선 새로운 돌파구이기도 하고요.

또 장남과 차남이 복직해서 출근을 하고 있고, 홍 회장 자신도 출근하면서 보수 8억원 이상을 챙겨가기도 했습니다. 마침 차남은 외식사업본부장 상무로 활동하고 있어요. 백미당이 바로 이 외식사업본부 관할이에요. 남양은 팔더라도 장래가 유망하고 아들까지 지킬 수 있는 백미당만큼은 가져가고 싶어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상황이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매각가. 지금이야 남양 주가가 반토막 나고 시총이 증발했지만 그래도 한때는 유업계 2위이자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했던 회사입니다.

유보자금만 8천억원 대에 달하고 생산 설비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기업 가치를 1조원 이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런 회사를 고작 3,100억원에 팔았으니, 홍 회장이 추가금을 요구했을 수 있다는 거죠.

한앤코가 홍 회장의 계약 해제 통보에 대해 "홍 회장이 일방적으로 주총을 미루고 무리한 요구를 했다"고 반박한 것도 이같은 해석에 힘을 싣는 대목입니다.

<앵커>

홍 회장이 주총을 미룬 것도 그런 조건들을 관철시키기 위한 결단이었나요?

<기자>

여기서부터는 해석이 갈립니다. 홍 회장은 협상을 하고 싶었다고, 한앤코는 일방적인 통보라고 말합니다.

우선 홍 회장은 "주식매매 계약 종결을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총 연기 배경을 밝혔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냥 개인들 간의 거래도 아니고 회사끼리의 거래잖아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사안을 주총 전날 밤에 팩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7월30일 열리기로 했던 주총에 경영권 이전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습니다. 연기한 날짜도 거래 종결일보다도 뒤인 9월14일입니다. 한앤코 입장에서는 홍 회장의 매각 의지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거죠.

사실 법적 공방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양측 모두 거래 종결일 전에 이미 변호인단을 선임했고요, 한앤코가 먼저 빨리 계약을 이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홍 회장 측은 기다렸다는 듯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한 한앤코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더니, 급기야 부도덕한 사모펀드에 회사를 넘길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앵커>

정리를 해보면 남양은 부정적인 여론에 떠밀려 회사를 팔긴 팔았는데, 헐값에 팔긴 아쉬우니까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는 느낌이고, 한앤코는 돈에 민감한 사모펀드답게 계약대로 하자며 선을 긋는 걸로 보입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이 계약, 정말 불평등한 계약입니까?

<기자>

홍 회장 측은 "M&A 거래에서 이례적일만큼 계약금도 한푼도 받지 않았고, 계약 내용도 매수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한 계약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업계에서는 매도인의 단순 변심에 따른 계약 해지시에는 계약금 몰취 혹은 계약금의 두 배를 페널티로 설정하는데, 홍 회장 말대로라면 뱉어낼 계약금이 없고, 있어도 620억원 수준인 만큼 부담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한앤코 측은 "오히려 거래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요구한 당사자는 홍 회장 측이었다"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매각가 역시도 당시 한앤코 입장에서는 시장가보다 1.8배를 더 주고 산 겁니다.

사실 우리가 계약서를 들여다본 게 아니기 때문에, 또 소송에서 따질 쟁점이 바로 이 계약의 유효성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양측이 더욱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매각 결렬 사태를 불러온 '선결 조건'이라는 게 계약서에 명시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 조건이 구두로라도 합의가 된 것인지, 법적 효력은 있는 것인지에 따라 양측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앵커>

홍 회장이 법적 분쟁이 끝나는대로 재매각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소송전이 장기화되면 사실상 물 건너가는 거 아닌가요?

<기자>

바로 내일(14일)이죠. 남양유업이 연기했던 임시주총이 열립니다. 주총 결과에 따라 법적 분쟁은 예상보다 빨리 끝날 수도,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임시주총에서는 신규 이사 선임을 주요 안건으로 하고 있는데요. 주총 안건에 오른 인물들이 한앤코의 인사들인 만큼, 남양 측에서 안건을 변경하거나 부결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너 일가가 경영 일선에 그대로 남을 경우, 그렇지 않아도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공정성과 투명성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던 남양은 사실상 지배구조 개선에 실패하는 셈이 됩니다. 이러면 소송에서 승기를 잡기도 힘들어지죠. 게다가 최근엔 육아휴직을 낸 직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오너 리스크가 또 다시 불거진 상황이고요.

홍 회장이 정말로 회사를 팔고 싶었는지, 내일 그 진의가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