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모자라'는 빠듯한 월급으로 소비를 포기해야 했던 직장인들에게 '돈 되는 부업'을 찾아드리는 이지효 기자의 체험기입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샤넬 매장 앞이 벌써부터 북적입니다. 제가 1등일 줄 알았는데 10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놀라고 있던 찰나 '도착했으면 인증하라'는 카톡 메시지가 옵니다. 아, 저는 일하러 왔죠. 정신을 차리고 얼른 줄을 섰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월급이 모자라> 첫 도전은 '줄서기 부업' 체험입니다.
명품 소비가 늘면서 어떤 브랜드든 인기있는 제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죠. 매장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야 그나마 살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래서 다들 백화점 개점 시간보다 몇시간 먼저 가서 줄을 서는 건데 줄 설 시간이 없는 분들은 저 같은 '알바'를 고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자리까지 만들 정도니 '샤넬 오픈런'의 위력이 어느 정돈인지 실감하시나요? 평일, 수요일이었는데 새벽부터 줄이 있었다니까요.
● '샤넬 줄서기' 전문조직의 정체는?
줄서기 알바는 보통 의뢰인, 그러니까 구매 당사자와 직접 소통하지 않습니다. 줄서기 알바들을 대거 고용한 전문업체가 따로 있기 때문인데요. 이제는 아예 하나의 산업이 됐을 정도입니다. 이런 업체는 '품'이라는 대행전문 사이트나 '시크먼트' 같은 명품 관련 네이버 커뮤니티, 또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 다양한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업체에서는 줄서기가 필요한 사람과 줄서기를 대신 해 줄 사람을 연결해 주고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떼어 갑니다. 대신 줄을 제대로 서는지 계속 확인하기 때문에 의뢰인 입장에서는 직접 구하는 것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이날 1등으로 도착한 20대 여성 A씨도 텐트를 치고 전날부터 하루를 꼬박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업체를 통한 알바였는데 그렇게 1등으로 도착하면 하루 수익은 10만원 정도. 이게 진짜로 돈이 되는 건지 A씨는 '줄서기 알바'를 주 5회 정도 하면서 전업으로 삼고 있더군요. 갑자기 업체에서 인터뷰를 막아 더 자세한 얘기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20대 남성 B씨는 줄서는 내내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더군요. 열심히 사는 고학생 같아 보여서 따뜻한 차라도 대접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 옆에 계셨던 희끗한 노년의 아주머니 C씨는 가끔 2시간씩 줄서는 알바를 하고 3만원 정도를 받아간다고 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C씨는 같은 명품 줄서기라도 강남이 더 많이 주는 것 같다고 토로하셨죠.
● "줄서고 금품 거래?"…이 알바 불법?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800만원 짜리 샤넬백 하나를 사기 위해 웃돈 얹어서 1,000만원을 기꺼이 지출할 수도 있습니다. 소위 '샤테크'를 할 수도 있고 능력만 된다면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겠죠. 한편으로 이 비용의 일부를 떼어 나의 불편을 덜어주는, 그러니까 대신 줄을 서주는 사람에게 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생업' 혹은 '돈'이 얽혀있다보니 마찰이 왕왕 일어납니다. 원하는 샤넬 제품을 사기 위해 알바를 고용하지 않고 직접 기다리는 분들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일이니까요. 제가 줄을 서는 동안에도 "새치기 하지 마라" "양심 없다" 이런 얘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변호사의 자문을 구한 결과 '줄서기 알바'는 불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음성거래로 암표를 팔면 경범죄로 벌금을 물게 되고, 매크로 프로그램 등으로 티켓을 대량으로 구매해 판다면 업무방해죄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신 줄을 서고 그에 상응한 대가로 금품이 오가는 행위 자체를 처벌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불법은 아니지만 '줄을 서는 사람이 곧 제품을 사는 사람'이라야 장사의 기본 원칙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죠?
● '샤넬 줄서기' 알바는 얼마나 벌까?
혹시 이런 알바를 도전할 생각이라면 몇가지 필수적인 준비물이 있습니다. 한여름 새벽이었는데도 무척 추웠는데 담요를 챙긴 건 신의 한 수였죠. 담요를 덮고 있으니 길바닥에서도 잠이 오더군요. (인간의 본능이란 이런 걸까요..) 사실 제일 힘든 건 심심함을 참는 일이었으니 '줄서기 알바'에 도전하실 분들은 꼭 책을 챙기거나 아니면 태블릿PC에 영화라도 담아가기를 추천합니다. 새벽 6시 쯤에는 제 뒤로 10명이 더 와서 저를 포함해 총 22~23명 정도. 백화점 문이 열릴 때 쯤인 9시 30분에는 제 자리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몰렸습니다. 이 때쯤 의뢰인이 줄서기를 하던 제게 와서 바통터치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새벽부터 나와서 고생한 저는 과연 얼마나 벌었을까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줄서기 알바'의 시세가 보통 시간당 1만원~1만 5,000원 정도로 형성돼 있습니다. 대행하는 업체에 따라 수수료가 다르기 때문에 얼마를 주는 지도 잘 살펴보고 구하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제 시급은 1만 3,000원이었습니다. 물론 의뢰인과 직접 연결되면 수수료가 안 듭니다. 6월 현재를 기준으로 최저시급이 8,720원이니까 노동력에 비하면, 그러니까 서 있기만 하고도 꽤 큰 돈을 만질 수 있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저는 오전 4시부터 9시 30분까지 5시간 30분 줄서기를 하고 총 7만 1,500원을 벌었습니다.
● "올려도 사네, 더 올려" 명품의 비밀
'샤넬 오픈런'의 세계에는 격언(?)도 존재합니다. "내가 샤넬을 사는 건 팔자에 달렸다"고. 매장마다 판매되는 제품이나 들어오는 물량이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팔자런' 이라는 겁니다. 또 "백화점 근처에 일양택배의 차가 보이면 물건이 들어온다"는 검증이 안 된 속설도 있습니다. 리셀 시장이 커진 덕분인지 마니아들의 전문용어도 생겨났습니다. 예컨대 샤넬 매장을 신강(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신본(신세계백화점 본점), 롯본(롯데백화점 본점), 압갤(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 등으로 부르고 제품도 당최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합니다. '클스'는 클래식 스몰 플립백, '클미'는 클래식 미디움 플랩백 등을 가리킨다고 하죠.
우리나라의 유례없는 명품, 특히 샤넬의 열기에 지난 4~5월 국내 백화점 3사의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많게는 56%까지 급증했습니다. 지난해 증가율에 두 배에 달한다면 감이 오실까요? 특히나 명품 소비에 젊은 MZ세대까지 가세하면서 '오픈런' 같은 이상 과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명품 브랜드들은 경쟁이 치열하고 과시욕이 강한 우리나라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려고 합니다. 사려는 사람이 많을 수록 가격을 올리고 물량은 제한하는 방식으로 희소성을 끌어 올리는 거죠. 실제로 1년에 한 두 번 가격을 올렸던 명품 업체들이 올해는 최대 5차례나 인상을 단행했죠. 명품 본거지라고 하는 프랑스보다 국내 평균 소비자 가격이 20%나 높습니다.
"제 의뢰인(?)은 '시간이 돈이다'며 저를 '줄서기 알바'로 쓰셨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제 시간도 돈으로 보상을 받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밤새 줄을 선 탓에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반듯하게 차려입은 의뢰인을 맞으면서 저는 왜 자괴감이 들었을까요? 저 같은 직장인에게 이런 편한 생활을 위한 선택지를 택할 날이 오긴 할까요..이런 자괴감을 극복할 수 있는 분이라면 '샤넬 오픈런 줄서기' 지금 도전해 보세요! 지금까지 이지효 기자였습니다."
▶ <월급이 모자라> '샤넬 줄서기' 편의 더 자세한 내용은 20일 오후 6시에 유튜브에서 확인하세요. 클릭(!) https://youtu.be/rAPzO8be8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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