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기후, 각종 바이러스 질병, 유럽통합 붕괴, 신흥국 자금이탈, 자산 거품...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위기 징후군이다. 극단적인 비관론인 ‘칵테일 위기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칵테일 위기란 영국 재무장관이었던 조지 오즈번이 처음 언급한 것으로 특정사건을 계기로 잠복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현상을 말한다.
2020년대 들어 첫해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것을 계기로 칵테일 위기론이 더 공감을 얻는 것은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주력 산업이 탄생하지 않고는 위기로 점철돼온 2010년대 상황을 풀 수 없다는 의미다. 더 이상 제로 금리, 양적완화로 대변되는 금융완화정책은 ‘캠플 주사’ 효과만 있을 뿐 세계 경제를 장기 침체라는 깊은 수렁으로 더 빠지게 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다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년 1월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와 영향 그리고 그 대응 방안(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을 단골 주제로 각국의 지도자와 기업인을 중심으로 격의 없는 토론이 펼쳐왔다.
WEF 창시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은 이전 산업혁명 보다 훨씬 큰 변화 속도와 규모, 그리고 강도로 생산, 분배, 소비 등 전체 시스템을 바꾸는 기회가 됨과 동시에 인간의 본성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류의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화려하게 꽃 피울 4차 산업혁명에 주도권 확보 여부에 따라 세계 경제 패권과 각국의 운명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미래유망기술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는 분야는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혹은 ‘슈퍼 인공지능(SAI·super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인공지능이란 인간성, 지성, 학습능력, 추론능력 등 인간의 두뇌작용을 컴퓨터 혹은 기계가 스스로 △추론 △학습 △판단하면서 행동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인공지능의 개념은 2차 세계 대전 전후로 경제, 공학, 수학, 물리학 등 다양한 학자들 사이에서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중에서도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발표한 '계산기와 지능'과 릭 라이더의 '인간과 컴퓨터의 공생' 논문은 현대 인공지능 연구의 시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말 이후 인공 지능은 실험 학문으로 시작됐지만 당초 예상과 기대와 달리 뚜렷한 접근 방법과 성과가 없어 1980년대까지 침체기를 맞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기계 학습 △로보틱스 △컴퓨터 비전 등 특정 기계 분야에 대해 연구되는 머신 러닝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분야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에는 글로벌 IT 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을 비즈니스에 접목하기 위한 투자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 분야에서 가장 빨리 치고 나가는 구글은 2013년 DNN 리서치를, 2014년에는 영국의 딥 러닝 전문 기업인 딥 마인드를 시작으로 젯 팩, 다크 블루랩스, 비전 팩토리 등 다양한 인공지능 벤처 기업을 인수해 나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활용되는 많은 분야 가운데 투자 자문업, 트레이딩 등 금융서비스 역시 사람의 판단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이용하고자 하는 금융회사가 많아지는 추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모든 금융회사가 인공지능 시스템을 모든 업무에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공지능 기술 개발은 가히 상상도 못할 속도로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각국 국민생활에도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수 많은 임상 정보가 축적되는 의료 서비스나 쉴 새 없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금융과 유통업 등 산업별로 인공지능의 적용 속도와 수준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상당 부분 대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 뇌 과학(Brain Science)
인공지능 다음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산업을 주도할 유망기술로 ‘뇌 과학(Brain Science)’을 꼽는다. 뇌는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고 △판단 △인지 △정서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다. 현대 과학기술의 한계에 있는 미지의 영역이자 인간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정복해야 할 최후의 난제로 평가받고 있다.
뇌 연구는 뇌 신경계의 신경생물학과 인지 과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뇌의 구조 △근본원리와 기능 △질병 해결법을 파악하는 연구 분야다. 현대 뇌 연구는 의학, 공학, 심리학, 금융 등 다양한 분야가 서로 연간 되어 있는 융합 학문으로 주요 분야는 크게 △뇌의 신경생물학적 이해 △뇌질환 예방과 극복 △인지 기능 △정보 처리 이해와 응용으로 나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구 구조 △생활 패턴 △기술 발전 등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뇌 연구의 필요성과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바람직한 방향이며 뇌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인간의 기대 수명이 늘어나자 알츠하이머, 파킨슨 병 등 퇴행성 뇌 활동 장애와 인지능력저하 질환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뇌 연구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 차원의 연구가 진행돼 왔다. 미국은 1990∼2000년을 ‘뇌 과학의 10년(Decade of Brain)’으로 선언하고 세계 뇌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버락 오바마 정부는 뇌 활동지도(BAM·brain activity map)를 완성하는 연구에 2023년까지 매년 3억 달러씩을 투자해 나갈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조 바이든 정부 들어서는 예산을 2배 이상 늘려나갈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영국, 독일 등 7개 국가 연구기관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10억 유로를 투자해 최신 뇌 과학 지식을 끌어 모아 슈퍼컴퓨터에 입력해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인간 뇌 프로젝트(HBP·human brain project)’를 시행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의 경우 전체 생명공학 분야 예산 중 뇌 연구 분야에 편성된 예산은 5%에도 못 미쳐 미국의 18%, 일본 7%, 영국 20%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을 중심으로 뇌 연구를 위한 본격적인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이들 국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지원액의 2배 이상 늘릴 필요가 있다.
앞으로 뇌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뇌 지도와 뇌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가 확립된다면 사회 전반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뇌 지도 연구가 완성되면 뇌의 호르몬 분비를 조절해 고소공포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과 같은 정신질환을 고칠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 뇌세포와 신경회로 변화 등 퇴행성 뇌 활동 장애를 줄여 인간의 기대수명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산업적인 면에서 뇌 연구는 생각만으로 컴퓨터나 기계를 움직이는 뇌와 기계와의 접속(BMI·brain machine interface) 기술과 같이 이종 기술과의 융합 연구가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앞으로는 기술 융합 연구를 통해 특정 기억을 저장하거나 지우게 되는 것도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로봇과의 연구와 인공지능 연구에도 가속도를 붙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 핵융합 (Nuclear Fusion)
갈수록 주요 에너지 자원인 화석연료의 고갈, 환경오염과 온난화문제가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핵융합(Nuclear Fusion)’과 같은 친환경 대체 에너지 수요와 개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에너지원이었던 석유는 정제와 사용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아황산가스 등 환경과 대기를 오염시키는 물질과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석탄은 매장량이 풍부하지만 수송이 어렵고 석유보다 더 큰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수력 에너지는 개발 과정에서 주변 환경을 파괴하는 단점도 있다. 풍력, 태양광 등 자연 에너지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고 간헐적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어 대용량 에너지원으로 발전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핵분열에 의해 생성되는 원자력 에너지는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산화탄소와 같은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많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차세대 대체 에너지로 핵융합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정책요인으로 주도국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한국이 핵에너지 정책에 우선순위를 되찾을 것인지 관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융합은 여러 기준에 의해 정의되지만 에너지 관점에서는 중수소(deuterium)와 삼중수소(titium)를 섭씨 1억도의 초고온에서 융합시켜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전체의 99.29%가 헬륨가스로 전환되고 나머지 0.91%의 질량은 막대한 에너지를 생성하게 된다. 태양과 모든 별에서 발생되는 에너지의 근원 역시 일종의 핵융합 현상이다. 1g의 핵융합 반응은 석유 8톤에 해당되는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핵융합 발전을 위한 리튬을 수입해야하기 때문에 에너지 개발을 위해 필요한 재료를 수입해야하는 단점도 있다. 핵융합은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폭탄과 보다 수백 배 강력한 수소폭탄을 만드는 주요 기술이기 때문에 군사적 용도로 사용될 우려도 있다. 바세나르 체제에서 거래금리 대상에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핵융합은 여전히 논쟁적인 에너지이지만 많은 국가들은 핵융합을 미래의 대체 에너지로 인식하고 기술 상용화를 위해 분주하다. 중국 과학기술대학은 매년 학부생 600명, 석박사생 900명 규모의 핵융합 전문 인력을 배출해 오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95년 건설을 시작해 2007년 완공된 핵융합 실험로가 플라스마 유지 시간을 55초를 기록해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는 등 다른 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지 않다가 정책적인 이유로 주춤거리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국가 간 기술과 핵 인식도 차이 등으로 어렵게 출범시킨 ‘국제 핵융합 실험로 공동개발사업(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에서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 등 7개 국가가 함께 핵융합 실험로를 지으며 기술 상용화를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