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어수선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수장으로 국세청장 출신인 김현준 사장이 23일 임명됐다.
작년 12월까지 1년 7개월 동안 LH를 이끈 변창흠 전 사장이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장 자리가 공석이 된 지 4개월 만이다.
변 사장 퇴임 직후 LH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발 빠르게 신임 사장 공모 절차에 착수하면서 수장 공백 기간이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난달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장 선임 절차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투기 의혹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청와대와 국토부에서는 기존에 검토하던 후보들로는 이번 사태 수습이 어렵다며 강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을 물색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시점에서 LH에 필요한 리더십이 부동산·주택 분야의 전문가라기보다 공직기강을 확립하고 개혁을 이룰 적임자라는 것이다.
고민 끝에 낙점된 인물이 김 전 국세청장이다.
사정기관 출신이 LH 수장으로 오는 것은 이례적이다.
2009년 LH가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의 통합 공사로 출범한 이후 초대 이지송 사장(현대건설 사장 출신)과 2·3대 이재영·박상우 사장(국토교통부 출신), 4대 변창흠 사장(학자·서울도시주택공사 사장 출신) 등이 모두 건설·주택 관련 전문가였다.
이를 두고 관가에서는 김 사장이 취임 후 강도 높은 내부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국민 눈높이에서 조직의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만큼,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고삐를 바짝 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정부는 LH 임직원에 대해서는 실제 사용 목적 외 토지취득을 금지하는 등 내부통제 방안을 예고한 바 있다.
아울러 LH 사태 관련 부처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투기 예방, 적발, 처벌, 부당이득 환수 등 네 가지 부분에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정부가 검토 중인 LH의 기능 조정과 관련해서도 김 사장은 조직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보다 투기 등 불법행위 예방을 위한 제도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LH를 주택공급 등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하도록 혁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H의 토지 공급과 신도시 조성 등 토지개발, 도시개발 등 핵심 기능은 남겨두고 주거복지나 주택 건설 등 다른 기능이 분리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LH 사장이 정책을 만드는 자리가 아닌,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인 만큼 김 사장은 LH 개혁과 관련한 정부의 기조를 충실히 따르며 내부 반발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사장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2·4 주택 공급대책과 신도시 계획 등을 통해 제시한 주택 공급을 현장에서 수행해야 하는 LH의 수장으로써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LH 내부에서는 사정기관 출신 수장을 맞는 것에 대해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관측된다.
한 차장급 직원은 "최근 사태로 조직이 신뢰를 잃어 개혁이 필요한 건 맞지만, 국세청장 출신이 사장으로 온다니 솔직히 좀 당혹스럽다. 업무 전문성에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새 수장을 맞아 조직이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차장급 직원은 "국세청이 LH보다 2배 정도 큰 조직인데, 여기서 최연소 청장을 지낸 걸로 알고 있다. 내부에서는 조직 쇄신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데, 기존 관행을 혁파하고 쇄신을 잘 추진해 조직이 하루빨리 정상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취임 전이지만, 24일부터 경남 진주 본사로 출근해 업무 현황 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