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잡으려다 실수요자 잡은 국토부·서울시 [공공재개발 선량한 피해자 양산③]

입력 2021-04-12 17:30
수정 2021-04-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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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 공공재개발 피해 논란, 더 자세히 짚어봅니다. 전효성 기자, 공공 재개발이 발표되기 전에 새 빌라를 샀는데, 나중에 공공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돼서 현금청산을 당한다. 그러니까 '분양권을 주지 않고 나가라'고 하는 게 이번 사건의 핵심입니다.

현금청산 기준이 되는 시점을 꼭 이렇게 앞당겨야 했나 싶습니다. '어느 지역을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한 시점부터 적용했으면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을 텐데요.

<기자>

이번 A씨의 사례는 공공 재개발이 공모 형태로 추진됐기 때문에 빚어진 문제입니다. 지난 일정을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공공 재개발의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9월 21일부터 공공 재개발을 어디서 추진할 지 공모를 시작했습니다.

공모지역 중에서 공공 재개발 지역을 선정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투기세력이 유입될 시간이 있었다는 게 정부와 서울시의 계산입니다. 공모 과정에서 재개발 지정과 관련한 정보가 새어 나갔을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이고요. 때문에 권리 산정일을 공모를 시작한 시점인 9월 21일로 앞당긴 겁니다.

문제는 A씨처럼 신축 빌라를 구입한 사람들입니다. 어디가 공공재개발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빌라를 계약했는데, 하루 아침에 현금 청산 대상이 된다니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겠죠. 때문에 A씨는 "서울시가 건축 허가를 내준만큼, 9월 21일 전에 짓기 시작한 빌라는 현금 청산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현금 청산을 당할 때 금액이라도 잘 쳐주면 손해가 덜 할수도 있는데 보상은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까? 이사도 가야 하고 새 집도 구해야 할 텐데요.

<기자>

일단 이사비 같은 지원은 별도로 없고, 현금 청산 가격은 시세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금청산은 주택의 공시가격에 일정 비율을 곱해서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빌라는 공시가격이 워낙 낮기 때문에 A씨가 분양받은 가격에 미치치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앵커>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의 집을 정부가 강제로 청산하고 보상도 제대로 안해준다면 '재산권 침해'라는 논란이 나올만도 하겠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A씨 역시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지만 재산권 침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는 '주어진 기준대로 적절하게 보상을 했다'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지난 2·4 대책 당시에도 '주택 우선 공급권'을 둘러싼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때도 정부는 수차례 "현금 청산은 정당한 보상 방법이다" "앞으로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일축하기도 했습니다.

A씨의 사례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법정공방으로 가더라도 보상 수준을 재판부가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앵커>

앞으로 정부가 공공 재개발 사업을 하면서 이런 문제가 곳곳에서 나타날 수 있겠습니다.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걸 정말 못막는 겁니까?

<기자>

이번 사건은 '정부가 조금 더 세심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공공이 주도해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시도되지 못했던 개발 정책입니다. 새로운 정책이 시장에 자리잡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죠.

처음 시도되는 정책에서 과도하게 보상 기준을 앞당기다보니 A씨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 겁니다. 물론, 투기세력의 진입을 막겠다는 의도였지만 이로 인해 수억원의 피해를 보게 된 사람이 발생한 것도 사실입니다.

앞서 리포트에서 보신 것처럼 한 사람이 정부와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투기 세력 차단이라는 의도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피해자를 최소화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라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