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에 풀린 '핵 얼룩' 비밀…획기적인 항암 치료제 개발 기대감

입력 2021-04-06 16:30
수정 2021-04-06 17:58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 "암의 아킬레스건 찾은 듯"
110년 전 발견된 '핵 얼룩' 역할 확인


신비의 베일에 싸였던 세포핵 소체가, 암 억제 단백질 p53의 특정 유전자 그룹 조절에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은 암에 대한 이해 증진을 넘어서 획기적인 암 치료법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의 셸리 버거 세포·발달 생물학 교수 연구팀은 5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몰레큘라 셀(Molecular Cell)'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은 버거 교수는 "핵 얼룩이 유전자 발현의 핵심 조절자 역할을 한다는 게 확인됐다"라면서 "이는 암에 대해서도 어떤 역할을 한다는 걸 시사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지방 코팅'을 거친 암세포는 산화 스트레스를 잘 견뎌 멀리 떨어진 부위에 전이할 확률이 높다.

'핵 얼룩(nuclear speckles)'은 포유류의 세포핵 내에 존재하는 '이어 맞추기 인자(splicing factor)' 항체로, 유전자의 DNA를 전사해 단백질 생성 정보를 가진 '전령 RNA'로 만드는 데 필요한 주요 분자들이 들어 있다.

핵 얼룩이 처음 발견된 건 1910년으로 111년이 지났지만, 정확한 기능과 제어 메커니즘을 확인하는 데까진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버거 교수팀은 핵 얼룩 연구의 기술적 난점을 상당 부분 극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p53이 특정 유전자 그룹의 발현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핵 얼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걸 확인했다. p53는 '마스터 스위치'처럼 유전자 활성화를 폭넓게 제어하는 '전사 인자(transcription factor)' 단백질이다.

p53이 특정 유전자 그룹에 이런 작용을 하려면 핵 얼룩을 거치는 과정이 필요했다. 표적 유전자들이 포함된 DNA와 핵 얼룩은 p53의 제어를 받아 한데로 모였는데 이 과정에서 둘 사이가 가까워지면 유전자 전사 수위가 급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p53의 제어를 받는 표적 유전자 가운데 핵 얼룩을 통해 활성화한 것들은 암세포의 성장 중지, 암세포의 프로그램 사멸 등 항암 기능에 관여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p53은 유전자의 항암 신호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이지만, 두 개의 암 가운데 하나꼴로 그런 기능이 교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암에선 p53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 억제 기능을 상실하고 암 종양의 성장을 앞장서 부추긴다고 본다.

연구팀은 암의 성장을 자극하는 돌연변이 p53의 유전자 제어에 핵 얼룩이 어느 정도 관여하는지 연구 중이다. 버거 교수는 "우리의 가설이 맞는다면 p53과 핵 얼룩의 연계를 방해하는 항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라면서 "이 연결 고리가 암의 아킬레스건이 될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사진=미 UTSW(텍사스대 사우스 웨스턴 메디컬 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