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모비스는 왜 반도체 자립을 선언했나 [배성재의 Fact-tory]

입력 2021-04-03 09:00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
'현대차 4월 생산 위기설'에
모비스 "반도체 자체생산" 선언
차량용 반도체 자립 계기될까
《Fact-tory는 산업(Factory) 속 사실(Fact)과 이야기(Story)들을 다룹니다. 곱씹는 재미가 있는 취재 후기를 텍스트로 전달드리겠습니다.》



말 그대로 '대란(大亂)'입니다. 고작 손톱만한 반도체 하나 때문에 세계 곳곳의 자동차 공장들이 멈춰 섰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포드와 GM, 도요타, 볼보 등의 미국, 멕시코, 캐나다 등 공장은 반도체가 없어 차량을 한 대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품귀 사태가 장기화되며 전 세계 자동차 산업계 매출에 606억 달러, 우리 돈 약 69조 원(자료: 알릭스파트너스)의 타격을 줄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옵니다.

당연하게도(?) 한국도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한국GM은 벌써 석 달째 부평공장 생산라인 절반을 비웠고, 현대자동차도 코나와 아이오닉5를 생산해야 할 울산 1공장의 가동을 다음 주 중단합니다. '반도체의 나라' 한국마저 멈춰 세운 반도체 대란, 이번 주 Fact-tory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어떻게 이 난국을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물가 상승까지 갈 수 있다"

모든 품귀 현상이 그렇듯, 최근 차량용 반도체의 소비는 늘고 생산은 줄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자동차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자동차 회사들이 작년 초 반도체 주문을 줄였는데, 이내 자동차 소비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3분기까지 전년대비 16%대 감소세를 보이다가 4분기엔 2.4% 감소하는데 그쳤습니다.

공급도 크게 줄었습니다. 2월 미국 남부의 기록적인 한파, 3월 일본 르네사스와 대만 TSMC 공장 화재 등 사고가 났기 때문입니다. 로이터 통신은 "자동차 회사들은 칩(반도체) 수급을 위해 이젠 가전 산업과도 경쟁 중"이라며 "칩 부족이 차와 가전 등 최종 제품의 가격도 끌어올리고 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나온 겁니다.

국내에서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현대차와 기아가 전기차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야심 차게 출시한 아이오닉5와 EV6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두 차량은 사전예약만 각각 2만 3,760대, 2만 1,016대를 기록하며 역대 사전예약 기록 TOP3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오닉5는 구동 모터 부족으로 4월 생산 계획을 기존 1만 대에서 2,600여 대로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지금 차를 주문하면 수령까지 1년이 넘게 걸릴 판입니다. 7월 출시 예정인 EV6은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주문량을 맞추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현대차가 4월부터는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전망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아직 3월 생산 실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의 3월 판매량이 각각 -21.8%, -43.2%, -23.5% 줄기도 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타격을 입은 한국GM은 이미 2월 생산이 -16.5% 줄었습니다. 3사의 고위급 관계자는 "현재 차량용 반도체로부터 자유로운 자동차 회사는 없다"면서 "서서히 반도체가 부족할 것"이라는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 "삼성도 SK도 안 해요"…품귀 현상 당분간 지속

이 정도 상황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생산라인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돈이 되지 않거든요.

사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에 비해서는 크지 않습니다. 수익성도 CPU, DRAM·NAND 등 메모리보다 적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마이크로 컨트롤 유닛(MCU)'을 주력 제품으로 다루는 NXP, 인피니온, 르네사스 등은 세계 반도체 매출 순위 9위권 밖에 있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회사들입니다.

이주완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텔 등 반도체 초대형 업체들은 시장도 작고 수익성도 낮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관심이 없다가 이제 겨우 발을 들여놓은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의 국가별 점유율에서도 한국은 고작 2.3%(IHS마켓, 2019)에 그쳤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는 한국에서조차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 연구위원은 "차량용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업체들이 생산하다 보니 수급 문제가 단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면서 "수급 해결을 위해서는 기존 전문 업체들의 증설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신·증설은 1.5~2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수급 확충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 테슬라 따라가는 모비스…반도체 자립 가능할까

상황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자 자동차 회사들도 반도체 수급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테슬라가 차량용 반도체를 모듈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자동차가 점차 전동화되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2030년엔 자동차 내 전자제품 비용이 제조 원가의 4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대차그룹의 전장 부품 사업을 맡고 있는 현대모비스도 지난달 31일 열린 중장기 성장전략 콘퍼런스에서 반도체 내재화, 즉 직접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12월 현대오트론으로부터 1,332억 원에 반도체 사업 부문 개발 인력과 관련 자산을 인수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진행됐습니다. 고봉철 현대모비스 ADAS시스템섹터장(상무)은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장기화되는 걸 감안해 대체품 개발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부랴부랴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문동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은 "부품 수급 차질이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을 해 나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에는 산업부 주최로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가 열렸고, 이어 중소형 반도체 기업과 자동차 업계를 연계하는 제품 교류회도 열렸습니다. 교류회 후 한 반도체 팹리스 업체 대표는 "차량용 반도체 '마이크로 컨트롤 유닛(MCU)' 제작에 필요한 기술 공급을 위해 OEM 업체와 진지하게 논의 중"이라며 결실이 있음을 알려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차량용 반도체가 대부분 대체 가능한 '공용 반도체'라고 말합니다. 김영광 현대모비스 기획실장(상무)은 "현재 사용 중인 반도체가 보통 전용 반도체가 아니라 공용 반도체인 경우가 많다"면서 "부족한 반도체와 유사한 걸 찾아서 대체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국내 자동차 중형 3사의 한 관계자도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장기화하는 걸 감안해 대체품을 적극적으로 발굴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차량용 반도체 품귀 악재가 와이어링 하네스, 반도체 3개 핵심소재의 사례처럼 차량용 반도체마저 국산으로 대체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