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뒤집기'는 한 주간 뉴스 가운데 독자들에게 그 배경과 파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뉴스를 발굴해 파헤쳐보는 코너로 주말보다 독자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줄 예정이다.
(편집자 주)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라임펀드 사태를 연상시키는 대규모 금융사고가 유럽에 터져 나왔다.
[관련기사] 또 2조 날린 손정의…英 핀테크 스타트업 '파산신청' https://www.wowtv.co.kr/NewsCenter/News/Read?articleId=A202103100133&t=NN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관련된 정치인과 관료, 금융회사들이 속속 들어나면서 2007년 전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초대형 금융스캔들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 40억달러 IPO 추진했던 다크호스
(사진 : 더 타임즈)
그린실 캐피탈(Greensill Capital)은 지난 2011년 호주 출신 은행가인 렉스 그린실이 설립했다. 집안의 농장경영으로 경험을 쌓은 그린실은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총리의 자문역을 지낼만큼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린실의 주력사업은 '공급망 금융(supply chain finance)'이다. 어렵게 들리지만 우리식으로 풀어내면 일종의 무역(상거래)금융과 다를 것이 없다. 납품(수출)업자에게 물품대금을 할인해서 먼저 지급하고 나중에 납품이 완료되면 주문(수입)업자에게 돈을 받아 그 차익을 챙기는 방식입니다. 기존에는 대형 은행이 제공하던 이 서비스를 어플리케이션을 포함해 온라인으로 처리하면서 '핀테크' 기업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규모가 커지자 독일 등지에 아예 은행을 설립해서 사업을 키웠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로부터 여왕 훈장까지 수여 받은 그린실은 일약 '스타'가 되었고. 손정의 비전펀드(15억달러)를 비롯한 다양한 투자자들의 투자가 밀려들었다.
지난해에는 여기에 힘입어 상장을 추진했고, 그린실 캐피탈의 기업가치는 40억달러(우리돈 4.5조원)로 평가 받기도 했다.
◈ 한 순간 추락한 그린실 캐피탈
낮은 이익률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자와 제조업자로 영역을 확장한 그린실은 대금을 지급한 납품업자의 부도율이 높아지면서 휘청대기 시작했다. 공급망 금융 확장 과정에서 발생한 부실채권을 모아 펀드로 만들었고, 여기에 투자자를 유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지급보증이 필요했다.
채권 부실이 늘어나면서 지난해에는 기존 투자자들의 유동성 공급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자금부족으로 지난 3월초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면서 잘나가던 핀테크 스타트업은 무너져버렸다.
◈ 드러난 그린실의 민낯...스캔들로 확산
설립자 그린실은 회사가 어려워지자 파산신청 이전에 자신과 가족들의 자금 2억달러(우리돈 약 2,200억원)를 미리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스위스의 대형은행인 크레딧 스위스는 그린실 펀드를 공동으로 운용했다가 100억달러(우리돈 약 11조원)의 자금 회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스위스 금융의 양대산맥인 UBS도 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을 설립했던 독일에서는 예금가입자이 약 3억달러의 돈을 날릴 판이고 미국의 시티그룹도 그린실 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국내 라임펀드 보다는 낫지만 현재 관련업계에서는 그린실 펀드의 자금회수율이 30%를 밑돌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파산보호 신청 직전까지 회사를 구하기 위해 그린실은 정치권에도 손을 뻗친 것으로 전해진다. 후견인 역할을 했던 캐머론 전 총리가 감독당국과 민간 금융회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각국 금융감독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수 정치인들을 이용했다는 루머까지 확산되고 있다.
◈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나비효과'
이번 금융사고는 직접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불거졌다. 만약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이 없었다면 주식시장 상장과 함께 또 하나의 성공신화로 연결될 수 있었지만 각종 무역과 상거래가 중단되고, 경제가 멈춰서면서 핀테크의 탈을 쓴 전통적인 박리다매형 금융사업은 그 밑천을 드러내고 말았다.
여기에 회사를 살리려던 창업주의 무리한 행보가 초대형 스캔들에 불을 붙였다. 남의 돈으로 리스크와 책임은 거의 지지 않는 '꽃놀이'를 하고 있는 손정의를 비롯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거품 만들기'에도 경종을 울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춰선 경제와 국민을 살리기 위해 단행된 초저금리와 무제한 돈풀기가 '뜻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quences)'로 이어진 셈이다. 시장에서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이번에 터져나온 스캔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한다.
물론 관련된 정,관,금 인사들은 하나같이 그린실의 사기행각이라며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 자산운용사에서 펀드에 가입했다면 사모,공모에 상관없이 투자설명서를 다시 한번 잘 읽어보기를 권한다. 서류에 Greensill, supply chain finance, General Atlantic, Softbank Vision Fund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면 가입한 금융회사에 문의하는게 좋다. 워낙 대형사고라 그 파장이 국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미리미리 확인하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