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뽑기,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연간 15조 원 규모, 대형 게임사 세 곳이 작년 한 해에만 8조 원씩 벌어들인 부분유료화 게임의 핵심 수익원인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에 의존하기엔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보니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넥슨이 공개 사과를 하고 포트나이트 등 인기 게임들이 부랴부랴 논란이 될 여지를 피하려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현재로써는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하고 투명하게 관리할 법적 기반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18년 쌓인 추억을 배신한 게임사…매출은 사상 최고
일본식 뽑기 게임, 가챠에서 유래한 확률형 아이템이 한국 게임에 등장한 건 2005년입니다. 바로 최근 확률 논란에 휩싸여 거듭 사과문을 내고 있는 메이플스토리가 게임 속 아이템으로 선보인 '부화기'가 시초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이 아이템의 작동 방식에 대한 유저들의 불만이 쌓여온 셈이죠.
지난 2월 이 게임의 무기 성능을 높이는 '환생의 불꽃' 아이템의 확률을 동일하게 변경한다는 업데이트는 빙산의 일각. 넥슨은 개발자와 한국 대표가 네 번에 걸친 사과문을 낸 끝에 여타 아이템들, 가장 많은 의혹이 제기된 큐브 등급 재설정 로직과 확률을 공개하고 다음 달 추가적인 설명회 자리까지 마련키로 했습니다.
아기자기한 캐릭터를 내세워 18년간 린저씨에 버금갈 만큼 팬층이 두꺼운 넥슨의 대표 게임이기에 유저들의 실망감이 상당하기 때문이죠. 메이플스토리는 넥슨의 IR자료 메인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사랑받는 작품이고, 연간 기준 작년에만 PC버전 매출 88%, 모바일 버전 매출 51%씩 오른 한국 내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를 비롯해 카트라이더(2004년), 회사의 시초였던 바람의 나라(1996년) 등 과거 인기 PC게임의 IP를 차례로 모바일에 이식해 한국 내 매출을 끌어올렸습니다. 작년 넥슨의 PC, 모바일 게임 연결 매출액은 2,930억엔(넥슨은 일본에 본사를 둔 일본 상장사), 우리 돈으로 3조 1,306억 원. 전년대비 18% 증가한 사상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 네 번의 사과 나왔지만…이번에도 반짝 논란?
유저들이 트럭 시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찾아가며 정점에 이른 분노를 표현하고 있지만, 넥슨을 뺀 다른 게임사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현실적으로 역부족입니다.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대형 게임사들은 그동안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인증을 받는 '자율규제'로 유료 아이템의 확률을 일부 공개해 비판과 불만들을 무마해왔기 때문입니다.
부분유료화 모델을 택한 거의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에 쓰이는 '확률형 아이템'은 표기도 제각각, 공개 범위도 제각각인 사실상 무법 지대에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 일본 등도 이 문제가 소비자 피해를 유발한다고 보고 규제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중국 조차도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고, 금액 상한을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파칭코 등에서 유래한 '콤플리트 가챠', 예를 들어 16개 혹은 25개 빙고칸을 모두 채워야 하고, 칸이 채워질 수록 점점 확률이 낮아지는 방식의 아이템 뽑기가 소비자들이 심리적으로 중간에 멈추기가 매우 어렵고, 예기치 않게 과소비하는 문제가 있어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이런데도 우리나라는 제도가 현실을 따라오지 못했던 겁니다. 15년 전 만든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로는 확률형 아이템이나 이를 이용한 게임에 대해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다보니, 소송을 해도 소비자만 부담을 떠안기 십상입니다. 그간 이 문제를 여러차례 제기했지만 산업 발전을 막는다는 비판에 막혀왔죠.
이 문제들을 뒤늦게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는 게임법 전부 개정안(이성헌 의원 대표발의)이 논의 중에 있습니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컴플리트 가챠'를 막기 위한 개정안도 추가로 발의된 상태입니다.
● '규제' 불만에 막힌 게임법…경쟁력 회복 발판될까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게임법 전부 개정안은 그동안 게임업계의 불만인 게임물 등급심사를 간소화하고, 중소 게임사에 대한 지원 등 여러 산업 활성화 방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업계는 '확률형 아이템의 범위, 공개할 정보'에 대해서만 문제삼고 있습니다.
게임업계의 반발이 여전한 가운데 법안 개정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임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공청회를 거쳐 법안심사소위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법안을 발의한 이성헌 의원은 "게임회사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법 개정을 통한 시스템 개선에 방점을 둬야 한다"며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이 공청회 안건으로 우선 채택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번 일은 비단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같은 게임사의 마비노기, 피파온라인을 비롯해 대형 게임사들의 작품 대부분이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부분유료화 모델임에도 추억을 찾고 재미를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들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모든 게임은 확률에 기반해 스토리를 쌓아가고, 어느 지역에 어떤 사건, 어떤 무기가 있을지 탐색하는 과정에서 스릴과 흥미를 얻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 얼마나 비용이 들어가는지, 그게 소비자들의 피해로 귀결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정보는 상세히 공개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비록 그것이 게임사가 지난 20년 가까이 숨겨온 '비밀'이라도 말이죠.
자본을 앞세운 중국 게임, 언어와 인구를 앞세운 미국 게임들의 공세 속에 양산형RPG,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해온 한국 게임사들이 이번에야 말로 변화할 계기를 찾게 될까요? 게임계와 소비자 모두를 겨냥한 법 개정이 이번에야 이뤄질지 지켜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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