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코노미-김형우 트래블월렛 대표] "수수료 노노!! '원스톱' 결제생태계 만들겠다"

입력 2021-03-0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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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월렛'은 금융 관련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스타트업 공유 오피스에 둥지를 튼 지 3년 남짓. 직원 25명 대부분은 IT 개발자들이다. 트래블월렛은 최근 '공짜 수수료'를 앞세운 환전·결제 서비스 앱을 선보였다. 미국 달러화나 유로화, 엔화 등으로 환전, 결제할 때 수수료가 한 푼도 들지 않는다. 동남아 국가 통화들에 대한 수수료도 기존보다 90% 싸다. 디지털 상품 개발에 목마른 금융업계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신한금융과 키움, IBK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투자받은 자금만 약 100억 원에 이른다. 트래블월렛 창업자, 김형우 대표를 만났다.



먼저 '공짜 수수료'가 어떻게 가능한 지 궁금했다. 이른바 '해외 직구'가 더이상 생소하지 않은 요즘, 해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면 보통 물건값의 2.5%가 거래 수수료로 붙는다. 예컨대 아마존에서 100달러 짜리 지갑을 구매 주문하면 배송비와 별도로 수수료 2.5달러를 더 내야 한다. 원화로 결제된 물건값이 현지 통화인 달러로 바뀌면서 중간중간 수수료가 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래블월렛을 통하면 100달러만 내면 된다. 수수료를 사라지게 한 마법의 비결, 김 대표는 "다단계 결제를 없앤 덕분"이라고 답했다.

"지금의 결제 시스템은 상당히 복잡하고 비효율적입니다. 제 계좌에서 신용카드사로 돈이 빠져 나가고 카드사는 국내 은행에, 국내 은행은 국내에 있는 외국계 은행에, 외국계 은행은 현지 본사 은행에, 본사 은행은 지역 은행에, 지역 은행이 물건을 판 가게에 물건 값을 지불하는 구조이거든요."

말하자면 '수수료 브로커' 없이 직접 정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얘기다. 어떻게? '비자(Visa)'와 손을 잡으면서다. 해외 현지 은행들과의 송금망을 통해 외환을 미리 충전해 뒀다가 결제를 하면 비자가 현지 판매자에게 물건값을 지불하는 형태다. 한 발 나아가 트래블월렛은 미국에 별도의 법인을 세우기도 했다. 꼭 금융사가 아니어도 현지 법인만 거치면 카드 대금 정산이 가능하도록 지난해 외국환 거래법이 바뀌면서 그 동안 국내 카드사들이 미국 금융사에 위탁해온 외환 업무를 직접 하기 위한 포석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수수료 공짜'가 참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창업의 목적은 결국 수익 아니겠는가, 어디서 돈을 벌까 궁금했다.

"신용카드사가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때 소비자와 가맹점(판매처) 양쪽에서 2.5%씩 수수료를 받아요. 여기서 아까 말씀드린 거래비용이 2.5% 수준입니다. 결국 2.5%만 수익으로 남는 셈이거든요. 저희는 거래비용 2.5% 없애고 소비자에게 수수료를 안받지만 가맹점에서 받는 수수료 2.5%가 수익으로 남는 거죠."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곧 수익이라는 건 기존 카드사들의 수익 창출구조와 같은 셈. 다만 이른바 '수수료 브로커'를 없애서 거래비용이 별도로 들지 않고 그래서 소비자에게 수수료 청구할 일이 없다는 점이 카드사와의 큰 차이이자, 이 회사의 경쟁력이다.



사실 이 같은 '공짜 수수료' 서비스를 먼저 내놓은 곳이 있다. 영국에 있는 '레볼루트'라는 회사다. 이미 2년 전 비자와 손잡고 트래블월렛과 같은 서비스를 선보이며 기업가치 10조 원을 웃도는 세계적 기업으로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김 대표는 영국 런던 경영대학원에서 외환상품을 공부한 유학파다. 국내로 돌아와 그는 삼성자산운용에서 1년간 외환 관련 업무를 해오다 그만 두고 트래블월렛을 창업했다. 레볼루트와 트래블월렛, 어떤 차이가 있는 지 물었다.

"서비스 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레볼루트는 앱 운영과 고객 관리, 마케팅에 특화된 회사예요. 외환거래나 카드 운영 등은 다른 회사들의 플랫폼을 활용하고요. 그런 점에서 저희는 그 반대입니다. 마케팅 DNA가 없어요. 대신 외환거래는 물론 카드의 경우도 발급, 운영, 승인까지 가능하도록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하고 심지어 외부에 제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세팅을 다 해 놨어요."

레볼루트는 외부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가져와 제공하는 플랫폼이 목적이지만 트래블월렛은 환전과 카드결제, 해외 송금 같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다른 회사에 모듈로 제공하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B2C 뿐만 아니라 B2B 서비스까지 준비돼 있다는 뜻이다. 그는 특히 이 같은 서비스 모듈 제공에 있어서 '세계 1위'라고 자부할 만큼 저렴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굳이 자신들이 '스타'가 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창업 이전부터 김 대표는 외환시장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국제금융센터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외환상품 개발에 소극적인 국내 금융업계의 모습에 답답하고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유학을 결심한 계기이기도 하다. 창업에 앞서 외환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국내 카드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기도 했다. 역시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을 만큼의 대공사에 선뜻 손을 들어줄 곳이 만무했기 때문이다.

"국내 외환 업무를 하면서 '왜'를 얘기하면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까'라는 답만 되돌아왔어요. 영국 유학을 떠난 것도 답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금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물리학이나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 연구하고 그러한 지식들로 상품 모델을 만들더라고요. 세계 금융산업에서 영국이 우위를 점하고 헤게모니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지요. 하지만 제가 삼성에 들어와서 외환시장에서 중요한 FX 옵션 상품 모델들을 만들어 거래처에 제시하면 돌아온 건 여전히 비웃음 뿐이었죠.(허허)"



트래블월렛은 '공짜 수수료'의 강점을 살려 외환 결제사업의 영역을 보다 공격적으로 넓혀 나가는 중이다. 해외 직구의 성장세도 무섭지만 진짜 큰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눌려있는 해외여행 수요에 있다는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백신 접종이 본격화 된 만큼 내년 여름쯤 국내 여행 수요의 70~80%가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환전부터 항공권 구매와 현지 교통, 숙박과 쇼핑 결제에 이르기까지 보다 싼 값에 '원 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는 외환결제 생태계를 꾸리겠다는 구상이다. 당장 이달 중순부터 아마존에서 직구를 할 경우 미리 할인된 값에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다음달에는 호텔 예약 플랫폼으로 유명한 '호텔스닷컴'과 손잡고 8~25% 저렴하게 숙박비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