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판분리' 속도내는 보험사…노사 갈등 해결이 '숙제'

입력 2021-02-10 16:00


최근 국내 보험사들이 경영 효율화의 일환으로 이른바 '제판분리'를 추진하고 나섰다. 제판분리란 제조와 판매를 분리한다는 의미로, 보험사는 상품 개발을 전담하고 상품 판매는 전문 자회사가 전담으로 맡는 구조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제판분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노조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진땀을 빼고 있다. 노사 갈등을 잠재우는 게 제판분리를 위한 첫 번째 과제로 떠오른 상황이다.

◆ 제판분리 시작부터 '시끌시끌'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과 미래에셋생명 등 보험사는 제판분리의 일환으로 판매 전문 자회사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판분리는 역량 전문화와 비용 효율성 제고 등의 효과가 있다고 평가되는 만큼 미국과 영국 등 소위 '보험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관련 논의가 진행됐는데, 국내에서도 이들 보험사가 지난해 12월부터 본격 추진에 나선 것이다.

특히 판매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면 소비자들이 보다 다양한 상품을 접해 선택권을 넓힐 수도 있고 지점 유지비와 관리비, 전속 설계사 훈련비 등을 절감해 보험사 입장에서는 영업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하지만 보험사 노조들은 제판분리가 구조조정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며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실제 본사 직원의 자회사 이동을 놓고 노사 갈등이 고조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보험사 소속 전속설계사 수는 18만6,922명으로 이미 매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노조는 판매 전문 자회사로 분리가 되면,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입장이다.

◆ 한화생명·삼성화재, 극적 합의…제판분리 '속도'

판매 전문 자회사 설립을 추진 중인 한화생명은 지난 1월 5일부터 약 3주간 노사간의 TF협상을 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해 지난 1월 29일부터 연가 투쟁에 돌입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일 사측과의 합의를 통해 5년 간 고용안정협약·재취업 약정·승진보상 등 노조 측의 요구사항이 담긴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며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한 상태다.

한화생명이 판매 전문 자회사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설립해 한화생명 전속설계사(약 2만 명)와 관련 임직원(약 1,400명)들을 이동시킬 경우, 출범과 동시에 국내 법인보험대리점(GA) 업계 1위에 오르게 된다.

이 때문에 여승주 한화생명 사장은 "보험 영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제판분리 의지를 확실히 내비치기도 했다.

삼성화재도 무기계약직인 삼성화재 소속 GA 매니저 120명을 위촉직으로 전환하고, 전환을 거부할 경우 정규직 업무로 직무를 변경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월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하며 삼성그룹 최초의 파업을 목전에 뒀지만, 최근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했다.

오상훈 삼성화재 노조위원장은 "대표이사와 면담을 통해 절충점을 찾았다"며 "GA매니저들을 위촉직으로 전환하려던 사측의 기존 입장과 달리 'GA코치'라는 제도를 만드는 데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 미래에셋생명, 노사 갈등 여전…과제 산적

미래에셋생명 역시 자회사형GA인 '미래에셋금융서비스'로 전속설계사 3,300여명을 이동하는 등 '제판분리' 계획을 밝혔지만 노조의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미래에셋생명은 최근 홈페이지 안내문을 통해 "3월부터 전속 판매채널을 분리해 각 사업본부와 지점은 미래에셋금융서비스로 고객을 찾을 예정"이라며 "미래에셋생명은 상품과 서비스 중심의 미래형 보험사로 도약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노조 측은 제판분리와 관련해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준달 미래에셋생명 노조위원장은 "지금까지는 투쟁을 한 40여일 정도 해왔다"며 "노조 측의 수용이 되면 합의를 하겠지만, 안 되면 다시 쟁의 투쟁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