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남산 예장자락에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애국가 2절 그대로,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 한 그루가 인상적인 공원입니다. 서울시는 "115년만에 이 곳을 시민께 돌려드린다"고 했습니다.
남산 예장자락은 지난 1905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던 땅입니다. 시는 총독부 건물 터와 '서울돌'이라 이름 붙인 잔해 일부를 이 곳에 두고 공원화하는 재생사업을 마무리해,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그런데 왜 서울시는 이 곳을 115년만에 시민께 돌려드린다고 했을까요. 일제는 이미 70년도 전에 패망했는데 말입니다.
일제 패망 후에도 시민들이 이 곳을 자유롭게 걸을 수 없었던 이유는 조선총독부 터에 들어섰던 중앙정보부 6국 때문입니다.
6국은 당시 민주화운동 인사에 대한 감시와 사찰, 취조를 담당했던 곳인데요, 지하에는 취조실이라는 이름의 고문실이 있습니다. 사람이 핏덩이가 될 때까지 고문을 가해 고기 육(肉)자를 붙여 '육국'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울시는 6국 건물을 철거한 뒤, 이 지하 취조실을 원자재 그대로 제 위치에 복원한 '기억 6'이라는 공간을 공원 안에 만들었습니다.
당시 정부에 쓴소리를 했던 사람이나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간첩으로 몰아버리는 용공 조작이 이 곳에서 일어나곤 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용공 조작 가운데 하나가 1974년 4월의 민청학련 사건입니다.
중앙정보부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허구의 단체를 만들어 거기에 정부가 주시했던 인물들을 끼워넣고, 고문으로 강제 자백을 받아내 180명을 구속 기소한 겁니다.
2009년이 되어서야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돼 피해자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씻은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고문받은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을 잡아 가둔 중정 직원과 고위 책임자들이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기억 6'은 오는 4월 3일 정식으로 문을 엽니다. 이 날엔 74년 4월 3일, 지하 고문실에 끌려갔던 그 때의 청년들이 직접 자리해 당시를 증언할 예정입니다.
네거티브 헤리티지라는 말이 있고,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사나 수난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건 후대를 위해서도 의미가 큰 일입니다.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목소리와 기억만으로 이 곳이 채워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서울시 사람들은 당시 중앙정보부에 근무했던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억울한 사람들의 반대편에서 그 일을 집행한 사람들의 기억을 함께 세우려 하는 겁니다.
이같은 시도가 아직 잘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해성 서울 역사재생 총감독은 "당시 관련한 중정 관계자들을 수소문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응답한 이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의 동기를 이해하고 또 넘어서는 일은 어쩌면 그 권력을 받았었던, 지금은 모습을 숨긴 이들에게도 필요한 한 걸음일 수 있습니다.
직접 나서는 것이 어렵다면 녹취나 기록으로라도 좋을 것입니다. 반성과 성찰이 뒤따른다면 어두운 역사도 제 빛을 내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74년 4월 그 때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한 자리에 서기를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