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자 중단은 자본주의 근간 흔드는 것"…은행업계 거센 반발

입력 2021-01-20 14:28
수정 2021-01-20 14:32


은행권을 향한 입김이 금융당국을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이다.

지난 19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한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에서 "코로나19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임대료만 줄이고 멈출 것이 아니라 은행권의 이자도 멈추거나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장은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가장 큰 이익을 보고 있는 업종은 금융업"이라며 "은행권도 금리를 낮춰주거나 불가피한 경우 은행이 이자를 중단시키거나 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업계는 "금융과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A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무슨 봉이냐"며 "은행을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자장사만 하는 곳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B은행 관계자 역시 "은행들도 코로나 여파를 감안해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하고 있고 서민정책 관련 상품도 출시하거나 개발하고 있다“며 “물론 은행이 일부 공공성의 색깔을 갖는 기업이긴 하지만 주식회사로서 기업이윤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착한', '고통 분담' 등과 같은 프레임으로 포퓰리즘 정치를 하는 데 은행을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은행들이 이처럼 반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은행들은 고객들이 맡긴 예금을 대출자금으로 활용한다. 차주가 은행에 내는 대출이자는 일정 마진을 떼고서 예금 고객에게 지급된다.

그런데 만약 홍 의장 말대로 은행이 차주로부터 대출이자를 받지 않게 된다면, 피해는 은행뿐만 아니라 예금 고객으로까지 고스란히 넘어가게 된다. 예금 고객에게 지급할 이자 수익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은행들은 채권 발행을 통해 대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채권 이자율을 포함해 일정 부분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대출이자를 받을 수 없다면 은행은 어디에서 자금을 충당하고 조달해야 할까.



정치권이 코로나19 위기극복을 명분으로 금융권을 압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은 지난해 12월 시중은행 간부들과 간담회를 갖고 "예대 금리 완화에 마음을 써달라"며 예금과 대출금리 격차 축소를 공개적으로 요구해 논란이 됐다.

지난해 말에는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착한 임대인에게 대출금리 인하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재산 증가, 신용등급 상승 등 신용상태가 개선됐다고 인정될 때 금융회사에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임대인이 임대료를 내렸을 경우, 은행, 상호저축은행 등 금융사에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서도 금융업권에서는 부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착한 임대인이라고 해서 신용리스크가 특별히 줄어들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다”며 “심지어 임대료 소득이 줄어들어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더 커졌다고 봐야 하는데, 리스크가 올라간 고객에게 금리를 더 낮춰준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했다.

문제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은행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압박수위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 금융지주사들의 연말 배당성향 하향 권고 등이 대표적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전 금융권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등과 같은 한시적인 금융지원조치는 연장이 불가피해보인다"고 밝혔다.

그동안 은행들은 “이자를 내기 힘든 한계기업의 대출이 한꺼번에 부실화되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이자유예만이라도 멈춰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하지만 은 위원장은 “금융권의 건전성이나 수익성을 볼 때 충분히 감내할 수준으로 판단되고, 대부분 많은 차주들이 돈을 갚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다시 한번 만기연장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최악의 경우 대출만기 연장,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이자탕감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는 상황.

도 넘은 관치·정치금융이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