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중소기업인 등 경영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안전·사고 관련 각종 규제들은 유럽과 같은 산업 안전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해 들여온 게 대부분입니다.
정치권이 강행을 서두르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경우 2007년 영국에서 제정된 '법인과실치사법'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산업 재해에 따른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법인에 연간 매출액의 최대 10% 수준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규입니다.
하지만 중대재해법과 달리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개인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는 데다, 경영진의 중대 과실이 산업재해 발생의 실질적 원인으로 반드시 증명돼야 처벌이 가능합니다.
이 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논란입니다.
영국에서 법인과실치사법이 제정된 후 산재사망자 수를 보면 조금 줄어들다 2011년부터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법과 별개로 국내에선 이미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가 세계 최고 수준인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사망률은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수위 높은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럽연합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인 REACH를 참고해 만든 화평법도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화평법은 기존 취급 화학물질과 신규 화학물질 등록 기준이 연간 0.1톤으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대상이 훨씬 넓습니다.
각 업체는 취급하는 화학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공인시험기관에 의뢰해 작성하거나 기존 평가 자료를 유럽 등으로부터 구매해 환경부에 제출해야 해, 중소기업들에 큰 부담입니다.
정부가 직접 시험·평가를 부담하는 미국과 일본과도 대조적인 상황.
유해물질의 안전한 관리를 통해 화학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둔 REACH의 취지에서 한참 멀어졌다는 분석입니다.
<인터뷰>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화평법에 의해서 정보를 등록하는 데 많은 비용을 써야 하기 때문에 화학 산업들이 산업 현장에다가 안전 또는 환경을 위해 투자해야 될 자본이 없어져요. 그래서 오히려 화평법·화관법이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선진국 규제의 취지가 과연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밀어붙이는 제도에도 제대로 담겨있는지 마지막으로 고민해봐야 할 시점입니다.
한국경제TV 김선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