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정경제'라 쓰고 '기업규제'로 읽는가?[이슈플러스]

입력 2020-11-19 17:36
수정 2020-11-19 17:36
<앵커>

경제에 깊이를 더하는 이슈플러스 시간입니다.

당정이 공정경제 3법에 대한 법안심사에 본격 착수했습니다.

상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그룹 감독법, 이렇게 세가지를 말하는데,

사실상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견제하려는 조치여서 '기업규제 3법'이라고도 부릅니다.

자칫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자체에 타격을 줄 위험도 있어서 논쟁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쟁점을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공정경제 3법이 왜 갈등을 빚고 있는지 양현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규제 3법에서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기술 탈취' 가능성입니다.

현재 논의되는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선임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최소 1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외부에서 뽑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적은 수의 주식으로도 최대주주의 의사에 반하는 적대세력이 감사위원 자리에 앉을 수 있어 기업 기밀이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겁니다.

기업들은 또 그동안 지켜온 '1주 1표'의 원칙을 깨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주주권 침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부회장

"얼마 전 현대자동차 주총에서 엘리엇이 추천하는 사람이 들어오려다 못 들어왔습니다. 수소차를 주력으로 하는 현대차에 경쟁업체 사람이 들어온다? 말도 안 되는 거죠."

소수의 모회사 지분을 갖고 있으면 자회사와 손자회사에까지 손해배상 소송이 가능한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논란입니다.

헤지펀드들이 인위적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단기차익을 챙기려 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소송 대응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경영활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인터뷰> 권재열 경희대학교 교수

"소송을 당했다는 자체만으로 회사 이미지를 추락시켜 주가를 하락시킬 수 있습니다. 엄격한 요건 하에 주주대표소송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것도 기업 입장에선 큰 부담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규제 대상이 총수 일가 지분 20% 이상으로 확대되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해 팔아야 하는 주식이 10조8천억 원에 이릅니다.

또 기업들의 효율적인 내부 거래를 막으면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결국 소비자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공정거래원회가 가진 전속고발권 폐지 역시 '소송 남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에는 공정위가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고발을 전담했지만,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누구나 검찰에 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검찰의 과도한 수사로 경영에 차질이 생길 뿐만 아니라 현재 시행 중인 리니언시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밖에도 금융당국 규제 대상을 개별 금융계열사뿐만 아니라 계열사가 속한 금융그룹까지 확대하겠다는 금융그룹감독법은 '이중규제' 논란이 있습니다.

기업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연내 법안 통과만을 강행하고 있어 논쟁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경제TV 양현주입니다.

<앵커>

산업부 임동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임 기자, 먼저 3% 룰, 감사 선임할 때 대주주가 지분이 많더라도 의결권은 최대 3%까지만 허용한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미 감사 선임할 때는 3%룰이 적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다만 지금은 사외이사를 최대주주 지분율대로 먼저 뽑고 그 중에서 감사위원을 뽑을 때 최대주주 3% 제한을 두는 방식인데,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처음부터 사외이사와 별도로 감사를 1명 이상 분리선출을 하겠다. 이러면서 3% 룰까지 적용하겠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현재는 감사위원에 갑자기 경쟁사 임원이나 헤지펀드 측 사람이 선출될 수 없는 구조인데, 개정안대로 한다면 그런 일들이 발생해서 기술탈취나 경영권 위협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앵커>

전에는 사외이사 중에서 감사를 뽑았는데 앞으로는 따로 뽑겠다. 이게 핵심이군요.

정부 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기자>

여당 측에서는 경영권을 전부 오너가에서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의 독립성과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상법개정안을 통해서 지배구조가 개선된다면 기업들이 시장에서 저평가받는 코리아디스카운트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네, 경영 체질 개선을 위해 제대로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얘기인데요.

취지에는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실제로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우려하는 일들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나요?

<기자>

먼저 기업들이 가장 반발하고 있는 '3% 룰'을 과거 사례를 통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3% 룰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고 그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총 3%로 제한하는 것이죠.

지난 2003년 헤지펀드인 소버린 자산운용이 SK의 경영권을 위협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당시 소버린은 보유한 SK 주식 14.9%를 펀드 5개로 쪼개 2.9%씩의 의결권을 행사했습니다.

소버린은 사외이사 추천과 함께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SK가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 3%룰이 있었다면 최태원 회장 측 의결권이 대폭 줄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이 상당히 큽니다.

<앵커>

그런데 이 3%룰에 재계의 반대가 크니까 민주당 측에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고 하던데요.

완화되면 좀 사정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기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3%만 의결권을 인정하는 기존안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각각 3%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안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조금 나아지긴 하겠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불리한게 현실입니다.

이번에는 LG화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LG화학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주)LG가 30.06%를 보유하고 있고 LG연암문화재단이 0.03%를 갖고 있습니다.

기존 3%룰을 적용해 감사위원을 선임 할 경우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은 총 3% 의결권 밖에 행사할 수 없죠.

논의중인 완화되는 안으로 다시 계산해도 3.03% 밖에 안됩니다.

하지만 외국기관투자자들이 연합한다고 가정할 경우 16.8%의 의결권을 행사 할 수 있어서 감사위원 선출을 놓고 표 대결을 한다면 여전히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말은 경쟁사의 임원이 LG화학의 감사위원에 앉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앵커>

지난해 현대자동차에 대해서 헤지펀드 엘리엇이 비슷한 시도를 했었죠?

<기자>

맞습니다. 당시 엘리엇은 현대차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으로 수소전지 부문 경쟁사 회장 등을 추천했습니다.

부결돼긴 했지만 역시 3% 룰이 있었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다중대표송제를 살펴보면요.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다중대표소송을 걸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지분의 0.01%인 390억 원 정도인데요.

물론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투기세력이 390억이 있다면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와 그 자회사 7곳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됩니다.

규모가 훨씬 작은 코스닥 기업들의 경우 적게는 100만원 만 있어도 자회사에 소송을 걸 수 있다고 합니다.

<앵커>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우려가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해외는 어떻습니까?

이런 법안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되고 있습니까?

<기자>

3%룰의 경우 해외에서는 지분율 등으로 사전 규제를 하는 것은 유례가 없다고 합니다.

또 다중대표소송제는 대부분 나라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캐나다와 호주는 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제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일본은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한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판례로 인정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일본처럼 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앵커>

기업들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기업규제 3법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경영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과속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는데요. 정부와 여당은 왜 모르쇠로 일관하는 걸까요?

<기자>

반기업 정서를 부추겨 지지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이 있고요.

특히 서두르는 것은 내년 레임덕을 우려한 초조함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민수 기자의 리포트로 관련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기자>

경영계 역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기업규제 3법'의 기본적인 입법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한 지금이어야 하는지, 절발한 기업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조금 더 논의할 수는 없는 지 되묻고 있습니다.

<인터뷰>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부회장

"실제로 이 법을 적용받는 건 기업입니다. 기업에서 왜 걱정을 하는지 미리 들어서 방지장치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경제인이 아닌 사람들의 의도대로 밀고 나가면 부작용은 반드시 나올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규제 3법을 무조건 연내 처리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에 대해 학계에서도 비판이 쏟아집니다.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법안 처리를 강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많은 상법 학자들이 상법 개정안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그 비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입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상법 학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청취했는지 법무부에 묻고 싶습니다."

상법 개정으로 인한 경영권을 침해를 막을 수 있는 방어 수단을 만들어 균형을 맞춰야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완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우리 상법이 채택하지 않고 있는 포이즌필 제도라던가, 복수 의결권제라든가, 황금주 등 공격세력이 있을 때 기업이 방어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데, 그런 논의는 과거부터 했지만 아직 도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법제만 너무 밀어붙이면 균형이 맞지 않죠."

하지만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의 최대주주 의결권 인정 범위를 다소 늘려주는 방안을 검토할 뿐, 무조건 연내에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여당 일부와 시민단체들은 이번 '기업규제 3법'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상훈 변호사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현재 상법 개정안은 굉장히 제한적인 효과를 가지는 부분이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한발이라도 더 나간다는 의미에서 최소한의 개선안 만큼은 일단 통과시켜야 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50%를 훌쩍 넘어선 가운데, 본격적인 레임덕을 우려한 정부와 여당이 무리하게라도 연내 통과를 강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김민수입니다.

<앵커>

그럼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정부와 여당이 연내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고 재계도 점점 더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17일 상법 개정안 심사에 돌입했습니다.

공정경제 3법 중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3%룰’을 두고 야당과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인데요.

앞서 국민의힘 측에서 공정경제 3법을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만큼 법안소위에서 여야의 치열한 논의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재계 역시 정부를 만나 공정경제 3법에 대한 우려 의견을 직접 전달하며 막판 방어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와 지배구조의 개선은 분명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다만 이념적인 문제로, 혹은 정권 담당자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은 분명 부작용을 가져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 현실을 바탕으로 충분한 논의와 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앵커>

임동진 기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