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을 보유한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서면서 세계 7위 수준 거대 국적항공사가 탄생할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16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항공운송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추진을 위해 한진칼에 8천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이번 주 내로 인수 의향서를 아시아나항공에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창립한 이후 32년간 이어진 국내 항공업계 양강 체제가 대한항공의 독주 체제로 변하게 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발간한 '세계 항공 운송 통계 2020'에 따르면 지난해 여객 및 화물 운송 실적 기준 대한항공 19위, 아시아나항공 29위로, 양사 운송량을 단순 합산하면 세계 7위권으로 순위가 상승한다.
국제 여객 RPK(항공편당 유상승객 수에 비행거리를 곱한 것) 기준으로는 대한항공 18위·아시아나항공 32위로, 두 회사를 합치면 10위인 아메리칸 항공과 비슷해진다.
국제 여객 수송 기준으로는 대한항공이 19위, 아시아나항공이 36위, 합치면 10위가 된다. 국제 화물 수송 기준으로는 대한항공 5위, 아시아나항공 23위로 캐세이퍼시픽을 제치고 3위에 오른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매출은 대한항공(12조2천억원)과 아시아나항공(6조9천억억원)을 합쳐 약 20조원이 되고, 자산은 40조원이 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정비나 조종사 교육 등을 일원화하면서 비용이 줄어들고, 중복 노선 간소화를 통해 수익성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노선 연결편과 마일리지 통합 등 소비자 편익도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긍정적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매출이 떨어진 올해 1~6월의 경우 대한항공 매출액은 4조원이고, 아시아나항공 매출액은 1조9천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겹치는 노선은 인수 이후 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지난해 두 회사의 실적 합산치가 그대로 나올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를 떠안게 되는 점은 대한항공에 부담이 된다. 대한항공 부채 총계는 23조원이고 아시아나항공은 약 12조원이다.
문제는 아시아나항공의 지난 2분기 기준 자본잠식률이 56.3%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연말 기준 자본잠식률이 50% 이상이면 관리 종목으로 지정되고, 2년 이상 50% 이상이면 상장 폐지까지 심사된다.
화물 운송 확대로 겨우 적자를 면한 대한항공 입장에서 부채비율이 2천291%에 달하는 아시아나항공을 품는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합쳐 정부가 5조원 가량을 지원한 상황에서 인수를 위한 추가적인 '혈세' 투입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두 국책은행 관리 체제로 돌입했다.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지원받은 3조3천억원을 이미 소진했고, 최근 기간산업안정기금 자금 2천400억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대한항공도 지난 4월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1조2천억원을 지원받았고, 연말에는 1조원가량의 기간산업안정기금도 신청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얼어붙은 항공업계 상황은 이번 '빅딜'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제몸 하나 간수하기 어려운 대한항공이 더 어려운 아시아나항공을 품는 것 자체가 도박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대한항공은 국제선 노선 110개 중 30% 수준인 33개만 운항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국제선 100개 중 26개만 운항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서 화물 운송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여객 수요가 회복되기까지는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점차 중국과 일본 노선 운항을 재개하고 있지만, 미주·유럽 노선의 '마비'로 국제선 운항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북반구가 겨울철에 접어들어 코로나19가 재유행할 조짐을 보이면서 올해 4분기 전망도 좋지 않다. 우리 정부의 입국 후 2주간 격리 조치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며 중국은 다시 외국인 입국 제한을 강화하고 있다.
한중 정부가 기업인 등 필수 인력 입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마련한 신속 통로(패스트트랙) 제도도 영향을 받으며 삼성전자 직원 등을 태우고 중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던 전세기까지 운항이 취소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에 따른 독과점 우려도 인수 절차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내선 수송객 점유율은 자회사까지 합칠 경우 절반을 넘어서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선 점유율은 대한항공은 22.9%, 아시아나항공은 19.3%다.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양사의 저가항공사(LCC)까지 더하면 62.5%에 달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에서 독과점을 이유로 인수 반대 의견을 표출할 수도 있다. 다만, 공정위가 아시아나항공을 회생 불가능한 회사로 판단할 것으로 보여 양사의 결합이 불허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외항사와 경쟁해야 하는 국내 항공사의 상황을 고려해 국내 점유율이 50%를 넘는다는 이유만으로 독과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부 직원과 주주들의 반발도 인수 과정이 진행되면서 파열음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인수되는 아시아나항공뿐 아니라 인수를 하게 될 주체인 대한항공도 일부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객실 승무원의 경우 노선 조정에 따른 대규모 감축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양사 조종사노조 등 6개 노조는 인수 관련 정보 공유, 노조의 인수 절차 참여 등을 사측에 요구할 방침이다. 6개 노조는 이날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조원태 회장과 대립해온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KCGI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반대하는 점도 변수다. 한진칼 지분의 45.23%를 보유한 KCGI-조현아 연합 등이 가처분 소송 등을 통해 산은의 한진칼 자금 투입 등을 저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KCGI는 산은이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투자하는 것에 반대하며 유상증자 강행 시 KCGI를 비롯한 주주연합이 먼저 증자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