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석유전쟁 "석유를 차지한 자,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입력 2020-10-29 09:50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눈에는 오바마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히는 2015년의 파리기후협정은 남 좋은 일만 시키는 형편없는 거래였다.

그 협정 때문에 “미국의 노동자와 납세자들은 직장을 잃었거나 저임금에 시달리며, 공장은 문을 닫고 경제성장은 뚜렷이 퇴조하는 대가를 치렀다”는 것이 트럼프의 주장이었다.

또한 “세계 최대의 에너지 자원국인 미국이 기후협정 때문에 그 지위를 내던지고, 결국 미국의 부를 포기하게 될 것”이므로, 이는 가장 앞장서서 바로잡아야 할 우선과제라고 선언했다.

전 세계 195개국이 무려 20년간의 협의를 걸쳐 성사시킨 역사적인 파리기후협정은 가차 없이 협약 탈퇴를 선언한 제45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 때문에 동력을 잃었다.

그의 대선 캐치 프레이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철강노동자와 강인한 석탄 광부, 연기를 내뿜는 굴뚝, 대형 자동차의 미국을 다시 건설하겠다는 말이었다.

‘오직 미국의 번영을 위하여’ 트럼프는 오바마가 마련한 친환경 정책들을 폐기하고 기껏 제한한 석탄발전소를 재가동 시키며 끊임없이 석유를 채굴하기 시작한다.

미국의 역대 어떤 정부도 이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화석연료에 몰두한 적은 없었다.

마침내 미국은 막대한 셰일 오일 생산 덕분에 석유 최대수입국에서 최대수출국으로 위상이 바뀌었고, 이러한 미국발 에너지 혁명은 아랍산유국을 포함해 중국, 러시아, 유럽을 뒤흔들고 국제 정세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자체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 생산이 가능해진 미국은 더 이상 석유 확보를 위해 호르무즈해협이나 걸프만을 수호해야 할 필요가 없다.

중동의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또한 맹방이던 유럽 각국과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자원과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는, 이른바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도 무색해졌다.

트럼프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방위금 분담 문제를 거론하고 미군 철수를 협박카드로 쓸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석유를 무기화하고 독점함으로써, 세계에서의 패권을 더욱 강화하려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새로운 ‘석유 자원의 시대’를 선언하고, 마구 석유를 개발하고 이용하고 대대적으로 사용한다.

그 결과 알래스카에서 멕시코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토지는 산업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으며, 그것이 가져온 부정적 여파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석유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힘의 암투가 전 세계의 정치, 경제, 환경에 얼마나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거시적으로뿐만 아니라 세부적으로도 꼼꼼히 살펴준다.

치밀하게 준비된 미국의 셰일혁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미국은 아랍 산유국들을 제치고 석유 초강대국이 되었으며, 새로운 석유시대의 권력자로 등장한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치열한 각축전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 중인지, 독자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미국에게 이란은 어떤 상황에 놓이든 ‘악의 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이란제재와 맞물린 중국의 오일 인민폐의 활약과 향후 전망에 이르기까지, 세계가 석유와 에너지를 중심으로 전쟁을 불사하는 현장은 화폐전쟁 못지않다.

새로운 석유 시대의 도래를 시사하는 증거들과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불길한 징조는 지금도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금의 경고를 정확히 인지하고 다가올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것을 촉구한다.

하이케 부흐터 지음/박병화 옮김/율리시즈/427쪽/1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