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 소식에 범 삼성가 중에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사람은 이재현 CJ 회장이다. 이재현 회장은 25일 오후 3시 40분 쯤,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이건희 회장 빈소를 방문했다. 이재현 회장은 부인인 김희재 여사와 자녀 이경후 CJ ENM상무, 이선호 CJ부장 내외 등과 함꼐 약 1시간 30분 가량 빈소에 머물렀다.
그 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오후 2시 30분경 빈소를 찾았다.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총괄사장이 함께 했다. 이명희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을 만나 깊은 애도를 표하고 위로했다.
눈길을 끈 건 이재현 회장의 애도다.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은)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라며 "가족을 무척 사랑하셨고 큰 집안을 잘 이끌어주신 저에게는 자랑스러운 작은 아버지"라고 말했다. 또 "일찍 영면에 드셔 황만하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재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큰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장남으로, 이재용 부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오랜 시간 선대의 갈등으로 깊어진 상처가 치유되는 순간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생전 기업 상속과 승계를 두고 공개적으로 거친 설전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50여년 가까이 진행된 갈등은 지난 2012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차명재산을 둘러싼 소송전에서 극에 달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이맹희 회장을 가리키며 ‘집에서 퇴출당한 양반’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상속 소송은 1,2심 모두 이건희 회장이 승소했고, 이맹희 회장이 지난 2015년 먼저 눈을 감으면서 화해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재용, 이재현, 3세 경영 시대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2014년 이재현 회장이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되자 이재용 부회장 등 범 삼성가에서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던 게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18년엔 삼성그룹에 몸담았던 박근희 전 삼성생명 부회장(현 CJ대한통운 부회장)을 CJ그룹에 영입한 것도 상징적 사건이다. 당시 이재현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 그룹의 화해 분위기를 맞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