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가운데 향후 삼성그룹주의 향방에 대한 국내 자산운용사 주요책임자(CIO)들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에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삼성전자가 수혜를 볼 것이란 진단이 있는 반면, 어느 한 곳도 유리하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다수 국내 CIO들은 이 회장 별세에 따른 수혜주로 지분 매각과 지배구조 개편 이슈가 존재하는 삼성물산과 삼성생명, 삼성전자를 꼽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회장이 보유한 상장주식은 지난 23일 종가 기준으로 총 18조2,251억원 수준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2억4,927만3,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900주(0.08%), 삼성SDS 9,701주(0.01%), 삼성물산 542만5,733주(2.86%), 삼성생명 4,151만9,180주(20.76%) 등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실제 상속시 부여되는 평가액은 사망 전후 2개월, 총 4개월의 종가 평균을 기준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향후 2개월의 주가 변화에 따라 달라질 예정이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과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이 회장의 보유 지분을 상속하기 위해 약 10조원의 상속세를 내야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상속세법령에 따라 평가액 30억원이 넘는 주식은 최고세율 50%가 적용되고, 증여자가 최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일 경우 평가에 대한 20% 할증이 적용된다.
이 부회장 등 이 회장의 직계가족들이 10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선 지분 매각 없이는 힘들 것이라는 게 국내 CIO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이 회장의 상속 자산 중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지배구조 상 최상위 계열사인 삼성물산의 매각 대신 삼성생명의 지분 매각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다.
한 국내 자산운용사 CIO는 "이 회장 별세로 수혜를 볼 삼성그룹주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이라며 "이 가운데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지배구조 상 최상위 계열사인 삼성물산의 매각 가능성이 낮고, 삼성생명은 매각 후 배당 확대를 통해 증여세를 감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향후 삼성그룹의 지배 회사가 누가 될 것이냐가 관건"이라며 "삼성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간다면 삼성물산의 지분가치를 높일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반면 일각에선 이 회장의 별세가 삼성그룹주의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미 이 회장이 6년간 와병중인 상황이었던데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일부 정치권의 부정적인 시각에 당장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긴 무리라는 설명이다. 실제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이 회장의 별세 소식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도 "삼성과 우리 경제의 새 출발, 새 질서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다른 국내 자산운용사 CIO는 "이 회장이 수년간 활동을 못한 만큼, 지분 이슈보단 공식적인 세대교체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며 "시장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된 수혜주에 관심을 가지겠지만, 내재가치와 펀더멘털은 중립적"이라고 판단했다.
한 국내 자산운용사 CIO도 "지금 이 부회장의 재판이 끝난 게 아닌 가운데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지배구조가 개편될 경우 최종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박용진 의원이 한 마디 한 만큼, 한쪽에 유리하게 지배구조가 개편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가는 지배구조 개편 예상 시나리오로 움직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 생각대로 안 됐다”며 “오히려 시장에서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아닌 현재 상태 그대로 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