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6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와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그의 대선 행보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재상고하지 않는 한 이번 판결로 그의 발목을 잡았던 사법 족쇄에서 완전히 풀려나 정치적 보폭이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지사는 지난 7월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로 당선무효 위기에서 벗어나자마자 각종 쟁점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미 코로나19 국면에 신천지 강제 역학조사 및 선제 방역조치, 재난기본소득 추진 등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은 데 이어 국민적 공분을 산 부동산 이슈의 한 가운데를 파고들기도 했다.
특히 아파트값 상승으로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자 고위 공직자의 부동산 백지신탁제와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도입, 장기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이른바 부동산정책 3종 세트와 함께 "비싼 집에 사는 게 죄는 아니다"며 실거주 1가구 1주택 보유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플랫폼 업계의 독점을 손보겠다며 공공배달앱 서비스를 직접 도입하는가 하면, 주식시장의 공매도 금지 연장이나 대주주 기준 변경에도 목소리를 냈다.
최근엔 성남시장 때부터 역점 추진한 지역화폐를 두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부정적인 보고서를 내자 "얼빠진 국책연구기관",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공박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야당을 향한 독설도 서슴지 않고 있다.
자신을 "희대의 포퓰리스트"라고 비판한 국민의힘을 향해 "짝퉁 기본소득으로 만든 희대의 사기집단"이라고 맞받으며 날을 세웠다.
특유의 직설 화법이 당내 반발에 직면하면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여 눈치 보기라는 지적도 받았다.
2차 재난지원금의 선별 지급을 두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고 했다가 문 대통령 지지층의 호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여당의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 공천 여부를 놓고는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며 무공천 원칙을 언급했다가 당 안팎에서 파장이 확산하자 "당원으로서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고 발을 빼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의 한 의원은 "당내 기반 부재라는 정치적 입지와 오버랩돼 묘한 상황을 연출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이 지사는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주변에 "내 살점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억강부약 대동세상을 이룬다면 치열한 논쟁을 피하지 않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한다.
이 지사 측 한 관계자는 "도정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집중하겠지만, 그래도 한층 더 민감한 의제에도 논쟁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판결로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직권남용 및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서 벗었다고 해서 이 지사의 대선가도가 순탄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는 관측이 있다.
지난 1~2월 3%에 머물던 이 지사의 대선주자 선호도(한국갤럽)는 지난달 22%로 상승해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2018년 7월 취임 첫 달 최하위(29.2%)를 기록했던 광역단체장 직무수행 평가조사(리얼미터)에서도 지난달 4개월 연속 1위(68.5%)에 오르며 도민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20%대의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벗어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는 답답한 흐름도 감지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에서 성남시장 신분으로 2016년 12월 18%(한국갤럽)로 정점을 찍었던 것과 비교하면 4% 정도 상승한 셈이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20%대 초반 지지율은 적극 지지자만으로 얻을 수 있는데, 그 정도로는 본선 경쟁력은 물론 당내 경선에서도 승리하기 어렵다"면서 "돌파력과 과단성 있는 장점을 살려야 하는데 그게 또 불안감을 주는 약점이 되기도 해서 고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양면성과 딜레마를 해소해야 하는데, 연령이나 정치적 경험으로 보면 전략이나 궤도 수정으로 해결되겠느냐"며 "조금은 조정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리더십 스타일이나 자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불거진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과 관련,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불똥이 어떻게 튈지도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부 언론은 지난 9일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펀드 하자 치유 관련' 문건에 채동욱 당시 옵티머스 고문(전 검찰총장)이 올해 5월 이 지사를 만나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추진 중이던 광주 봉현물류단지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문의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이 지사는 "공직에 몸담은 이래 인사든 사업이든 청탁을 철저히 배격해왔다"며 "정치를 하면서 업자들과 관련을 맺거나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았고, 완고한 기득권에 포위돼 어항 속 금붕어처럼 감시받는 속에서 부정 행정은 곧 죽음임을 십수년간 체험했다"고 방어막을 쳐둔 상태다.
이 지사 측 한 관계자는 "지난 선거 때 이미 나올 수 있는 악재는 다 나왔다"면서 "그런 면에서 보면 누구보다 홀가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향후 행보를 두고 이 지사 측은 "도지사로서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하며 도정에 집중하겠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 측근은 "도지사 초선으로 첫 임기도 마치지 않았다"며 "대선에 도전하려면 지지율도 지지율이지만 무엇보다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지난 6월 취임 2년 당시 지역기자 간담회에서 "대선이 아니라 (도지사) 재선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주권자가 결정할 것"이라며 정치적 진로를 열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지사는 기존의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벗어던질 기세로 최근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 주류 언론매체를 통해 대중과 접점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이달 5일 블룸버그, 9일 월스트리트저널 등과 잇따라 인터뷰를 갖고 자신의 '필생의 과업'이라는 기본소득을 역설했다.
15일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영남지역의 민감한 현안인 동남권 신공항과 관련, "가덕신공항을 만드는 게 훨씬 낫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국회(대부업 금리 인하), 종교계(방역 협조), 베를린시장(소녀상 철거 철회) 등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협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 '서한문 정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심리적 여유가 생긴 만큼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적 면모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고, 검찰개혁이나 언론개혁 같은 정부·여당의 과제나 국가 현안에 대해서도 더욱더 거침없는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재명 파기환송심 무죄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