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서 한국인 여대생 트램에 치여 사망…유족 "부실수사"

입력 2020-10-06 20:48
수정 2020-10-06 21:21
현지 검찰 "피해자 과실"…유족 반발


지난 2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트램에 치여 숨진 한국 유학생 사건과 관련해 현지 검찰이 피해자 과실에 따른 단순 사고로 수사를 종결하기로 결정하자 유족 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국 유학 중이던 여대생 A(21)씨는 지난 2월 10일 자정 무렵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에서 철길을 건너다 트램(노면전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는 A씨가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 직후 발생했다.

트램 정거장의 철길을 건너던 A씨가 턱에 걸려 넘어졌고 다시 일어나려던 순간 정거장에서 막 출발한 트램이 A씨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진행했다. 해당 트램은 밀라노시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작년 9월 영국 대학에 새로 입학한 A씨는 방학 시즌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밀라노를 여행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이탈리아로 온 유족은 오열했고, 사고 장면을 목격한 친구들도 큰 충격을 받아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밀라노 검찰은 곧바로 트램 기관사 과실 여부를 포함한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5개월간 진행된 수사의 결론은 피해자 과실이었다.

피해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갑자기 철길을 건넜고 트램 기관사가 운전석에서 넘어진 피해자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현지 검찰은 이런 사정을 들어 '기관사가 예상하기 어려운 사고'였다며 피해자 과실에 따른 단순 사고로 규정, 지난 7월 30일 법원에 수사 종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명백한 부실 수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통유리로 된 운전석 앞 시야가 넓게 트여 있어 기관사가 전방 주의 의무만 제대로 지켰다면 피해자를 충분히 식별할 수 있었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실제 트램 기관실 내 CCTV 영상에는 피해자가 철길을 건너는 순간부터 넘어졌다가 일어나려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유족 측은 이 CCTV가 기관사 눈높이와 같은 위치에 설치돼 있다고 했다.

이를 토대로 피해자가 넘어진 뒤부터 트램이 출발하기까지 약 5초 사이에 기관사 시선이 다른 데 가 있었던 게 아닌지 유족 측은 의심한다.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라는 검찰 측 주장도 목격자의 진술을 반영한 것일 뿐이며 CCTV상 A씨가 철길을 건널 당시 흔들림이 없었고 실제 부검에서는 알코올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유족 측 변호인은 최근 이러한 수사상 결점을 적시한 재수사 요청서를 법원 측에 보냈다.

유족 측은 "피해자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고 수사를 대충 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법원의 재수사 결정을 통해 사고 책임 소재가 명확히 가려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