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배터리'는 없었지만…테슬라 입김은 더 세졌다 [배성재의 Fact-tory]

입력 2020-09-23 18:00
수정 2021-02-18 23:48
"100만마일 배터리 어디에?"…내외신 혹평
실망과는 반대로 국내외 2차전지주 '약세'
"사실상 내재화 선언…배터리 가격 경쟁 신호탄"
《Fact-tory는 산업(Factory) 속 사실(Fact)과 이야기(Story)들을 다룹니다. 곱씹는 재미가 있는 취재 후기를 텍스트로 전달드리겠습니다.》



국내 투자자들과 배터리업계가 주목했던 테슬라의 배터리데이 행사가 23일 오전(한국시간) 마무리됐다. 배터리 업계 판도를 뒤바꿀 '꿈의 배터리'나 '깜짝 발표'는 없었다. 테슬라는 배터리 최신 기술과 배터리 생산 비용을 줄이는 기술 소개에 주안점을 뒀다.

● 과연 '속 빈 강정일까'

배터리데이 발표 이전 ▲배터리 내재화 ▲전고체전지 ▲나노와이어 등이 예상됐던 만큼, '속 빈 강정'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다르다. 배터리데이 발표 내용은 이미 글로벌 배터리 업계와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2차전지 관련주와 글로벌 배터리사(社)들의 주가는 배터리데이 후 하락세다. 완성차 배터리를 만드는 LG화학과 삼성SDI 주가는 각각 -1.41%, -2.24%씩 빠졌다. LG화학과 함께 실리콘 음극재를 상용화 한 대주전자재료(-4.46%), 최근 큰 상승폭을 보인 전해액 첨가제 업체 천보(-5.35%) 모두 약세를 보였다.

중국의 CATL(-1.88%), 파나소닉(-3.74%) 등 중국과 일본의 대표 배터리 업체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주가가 떨어졌다. 국내, 글로벌 가릴 것 없이 투자자들은 테슬라 배터리데이 발표가 배터리 업계 성장성을 훼손할 것으로 해석했다.

● 배터리데이 핵심: "지금의 배터리, 너무 작고 비싸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테슬라의 배터리 공급업체들이 머스크의 가격 압박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보도했다.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직접 배터리 기술과 생산을 다룬 자체로 배터리 업계는 어딘가 불편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직접적으로 "지금의 배터리는 너무 작고 생산도 적다"면서 "앞으로 배터리 생산 비용에 비해 배터리 용량도 빠르게 개선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꼬집었다.

머스크 CEO는 뒤이어 가격은 낮추고 성능은 올린 자사 배터리를 소개해 본격적인 배터리 가격 경쟁 시대를 예고했다. 업계에서는 주주총회 때마다 신차를 발표했던 머스크 CEO가 이번엔 새로운 원통형 배터리셀 '4680'을 공개한 점을 파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배터리 용량은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에, 기존에 사용됐던 원형 배터리보다 길이, 굵기 모두 굵어졌다. CNBC는 "전기차를 만드는 테슬라가 배터리 성능 향상을 약속한 점은 큰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18개월 내로 머스크 CEO는 배터리 팩의 KWh(킬로와트시) 당 비용은 56% 낮추고, 주행거리는 54% 늘릴 것을 예고했다. 궁극적으로는 2만 5천 달러, 우리 돈 약 3천만원이 안 되는 '모델 S'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싸면서 테슬라가 자체 제작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출시되는 셈이다. 사실상 배터리를 스스로 수급하는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한 것과 다름 없다.



● 사실상의 내재화 선언…가격 낮추기 경쟁 시작

'원청(?)'이 배터리 가격과 성능을 짚었으니, '하청'인 배터리 업계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이번 테슬라의 배터리데이가 배터리 업계 가격 경쟁의 '신호탄'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번 이벤트를 통해 테슬라가 배터리 공급사에 가격을 낮추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은 지켜볼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테슬라는 배터리데이에서 2022년에 100GWh, 2030년에 3천GWh의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을 제시했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테슬라의 2022년 연간 전기차 예상 판매량을 175만대, 80KWh로 가정할 때, 차량 약 30~40%의 배터리를 내재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봤다.

물론 단기적으로 배터리 업계가 받을 타격은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 연구원도 테슬라의 배터리 내재화가 "아직 2~3년 정도 남은 이슈"라며 "테슬라는 대규모 셀 생산 경험이 없는 만큼 보수적인 관점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론 머스크 CEO도 22일 트위터를 통해 "배터리를 2022년까지 의미 있는 수준까지 생산하진 못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완성차업계 전기차 배터리 내재화, 트랜드화 가능성"

이번 이벤트는 완성차 업계에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3천만원 수준의 전기차가 나오면 자연스레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 경쟁을 잃기 때문이다. 글로벌 배터리 수급 부족까지 겹치면서 완성차들이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2차전지 주가가 약세인 것은 이들이 공급하는 각 자동차사의 경쟁력이 테슬라의 저가 모델 발표로 상대적으로 위협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속 빈 강정'이라기엔, 배터리데이가 일으킨 전기차 업계 전반의 반향이 상당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