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론’과 ‘중앙은행 만능시대’가 간다…‘큰 정부론’과 ‘케인즈언’ 부활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9-14 10:11


길게는 리먼 브러더스, 짧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위기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었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의 만능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의 입지도 크게 약해져 종전처럼 소신 있는 행동이 눈에 띄지 않는다. 경제정책의 주안점은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2017년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도로·철도·항만·항공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데 주력해 왔다. 케인즈 이론이 태동한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루즈벨트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유사해 ‘트럼프-케인즈언 정책’이라고도 부른다. 제46대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이 정책이 더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도 재정위기 이후 8년 동안 지속된 금융완화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재정정책과 분담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사임으로 등장할 스가 정부가 지난 2012년부터 추진해온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자민당의 전통대로 재정정책을 동원해 코로나 사태로 ‘위기’까지 거론되는 경기를 헤쳐나갈 것이라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은 매년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재정정책을 적극 활용해 13차 5개년 기간 중 목표 성장률(올해는 제시하지 않았음)을 달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도 재정수단 위주의 뉴딜 정책을 추진해 코로나 사태로 어려워진 경기를 풀어나가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중요한 것은 재정정책의 효과다. 미국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코프 교수와 같은 재정적자 축소론자는 국채 발행을 통해 공공지출을 늘리면 국채 소화 과정에서 상승한 금리로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는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발생한다고 우려한다. 오히려 바로-리카르도의 동등이론에 따라 재정지출을 줄이면 그만큼 민간소비가 늘어나는 ‘구인 효과(crowding in effect)’가 발생해 경기가 살아난다고 주장한다(로코프 독트린).

하지만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 시립대 교수와 같은 경기 부양론자는 불확실성 시대에 있어서는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등을 통해 돈을 무제한 푼다 하더라도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에 들어가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때는 국채 공급을 늘려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경향을 완화시켜주면 돈이 실물 경제에 유입돼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크루그먼 독트린).

역사적으로 재정지출승수는 1930년 당시 ‘3배‘를 상회하다가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1배’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온다. 미국 학계에서는 대부분 ‘1∼2배’ 사이로 보고 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는 2.2배로 높게 추정했다. 이 때문에 금융완화와 재정적자 축소 논쟁 속에 각국이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배경이다.

경기 부양론자도 재정정책에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종전보다 재정지출을 늘려 총수요를 자극하는 케인즈언 정책이 화려하게 부활할 가능성은 적다는 의미다. 1980년대 중반 이전 회복기에는 성장률이 각국 2∼4% 포인트 높아지면 곧바로 고용이 늘어났다. 이 때문에 지표경기가 살아나면 체감경기까지 개선돼 재정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고 경기가 회복되자 재정수입이 증가하면서 재정적자가 축소됐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재정정책으로 성장률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고용이 늘지 않아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심하게 발생했다. 이때 높아진 성장률만 감안해 금리인상 등과 같은 출구전략(혹은 긴축정책)을 조기에 추진하면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 재닛 옐런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2015년 12월 이후 금리를 올릴 때마다 달러 강세와 함께 이 점을 가장 우려해 왔다.

반대로 체감경기를 개선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특정국에서 동일한 시점에 인플레이션(재정 인플레이션이라 부른다)와 디플레이션 요인이 공존하는 ‘바이 플레이션 문제로 2020년대 들어 새로운 연구 과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경제정책 역사상 경기부양과 재정적자, 인플레이션을 함께 풀어가 성공한 사례가 많다. 1990년대 후반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추진해 재정과 물가안정 속에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신경제’ 신화를 낳았던 .‘페이-고(pay-go)’ 원칙이다. 이 원칙은 재정지출 총량은 동결하되 지출 내역에 있어 경기부양 효과가 적은 쪽은 삭감(pay)하고 그 삭감분으로 경기부양 효과가 높은 쪽으로 밀어(go)주면 경기가 회복되고 재정적자도 축소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인 재정 인플레이션도 감세 정책으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980년대 초 제2차 오일쇼크 여파로 ‘스테그플레이션(경기침체에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라는 정책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미국 경제를 구해냈던 것이 ‘레이건노믹스’, 공급중시 경제학이다.

공급중시 경제학이란 새로운 경기 대책으로 자리잡은 감세정책의 이론적 토대인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보면 세율과 재정수입 간 정(正)의 구간을 ‘표준 지대(normal zone)’, 부(負)의 구간을 ‘비표준 지대(abnormal zone)’라 부른다. 현재 세율이 비표준 지대에 있을 때에는 세금을 내려주는 것이 일하고자 의욕을 제고시켜 성장률이 높아지면 재정수입이 늘어난다.

감세 정책으로 재정인플레이션 우려를 완화시키는 것은 총공급 곡선(AgS·노동시장과 생산함수에 의해 도출)과 총수요 곡선(AgD·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에 의해 도출)을 통해 보면 쉽게 이해된다. 세금 감면으로 AgS가 우측으로 이동되면 성장률이 높아지고 물가는 떨어지게 된다. ‘트럼프 쇼크’, ‘트럼프 트라우마’, ‘트럼프 리스크’로 비교적 큰 폭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았던 미국 증시가 트럼프 당선 이후 강한 상승세를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시기, 46대 대통령 선거 결과, 경기 부양책 추진, 비이성적 과열 등…. 최근 월가에서 달아오르는 논쟁들이다. 이중 가장 뜨거운 것은 증시 앞날과 관련해 벌이는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논쟁’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 등은 증시에 ‘광기’가 끼었다고 경고했다. 과연 재정정책이 광기 논쟁을 잠재울 수 있을지 궁금하다. 풀어낸다면 ‘큰 정부론’과 ‘케인즈언’이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 TV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