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요즘 분쟁지역인 남중국해에는 연일 미군 정찰기가 날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위협적인 미사일을 발사했다. 만에 하나 실수로라도 중국 미사일에 미군 정찰기가 격추라도 된다면 정말 상상하기 싫은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지역은 세계 해상 물동량의 30% 이상이 오가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세계 석유 매장량의 10%가 있어 자원도 풍부하다. 중국은 이 지역 전체 해역의 90%에 일명 ‘남해구단선’을 설정하고 인공섬을 만들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 상설중재재판소는 지난 2016년 중국 인공섬이 영해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인공섬에 군사시설을 늘리고 있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를 비난하면서 최근 정찰기를 띄워 동향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만약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이 지역의 미중 간 충돌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에 참여한 24곳의 중국 국영기업과 이에 연루된 개인들을 8월26일부터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또한 화웨이(휴대폰) 및 틱톡(통신)에 이어 SMIC(반도체) 등 중국의 대표 기업들에 대한 제재와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경제적으로 중국 고사 작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중국은 “2032년이면 중국 경제규모가 미국을 추월한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으며, 결사항전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당장은 불리하지만 지구전으로 가면 중국이 미국을 이긴다는 계산이다.
미중간 전선은 전 지구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제전쟁에 동맹국들의 참전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영국 등 유럽 서방국가는 이미 참전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호주가 이 대열에 가담했다.(중국 ‘홍콩보안법’ 반대 및 미국의 중국 경제 제재 지지 입장을 ‘참전’으로 표현)
미국은 최근 한미일 군사동맹을 내세워 모호한 입장을 취한 한국에 ‘참전’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8월말 중국 및 북한의 위협에 대한 논의를 위해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제안 형식으로 한국에 ‘참전’ 초청장을 보냈다. 그러나 한국은 코로나19 상황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결국 회담은 미일 양국으로만 축소되어 열렸다. 이후 미국은 일방적으로 한국을 자기편으로 편입시켰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미중 갈등과 관련해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합류하는 것을 보고 있다”면서 호주, 일본, 한국을 특정해 언급했다. 호주 및 일본에 이어 한국 역시 미국편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미적거리는 한국을 놓고 미국은 그냥 한 편이라고 공개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생각은 다르다. 중국은 한국을 중국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은 8월 22일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부산으로 보내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4시간 넘게 회담했다. 코로나19 사태 속 첫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한인데다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 약속을 재차 언급해 이 회담을 세계가 주목했다. 미국 우방 중 약한 고리인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적극 공략으로 해석된다. 한국을 놓고 미국과 중국은 모두 자기편으로 생각하는 형국이다.
여기서 주목할 나라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선언했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지난 6월 26일 화상으로 진행된 아세안 정상회의 주재 자리에서 "미국과 중국은 모두 대규모 무역 파트너"라며 "베트남과 아세안은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는 만큼 베트남은 아세안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이 공익을 위해 차이를 극복하고 공통점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처럼 베트남은 명확한 ‘중립’을 표방했다. 아니 ‘중립’을 넘어 미중에 훈수까지 뒀다고 봐야한다.
정확히 구분해서 얘기하면 베트남은 경제적으로는 미국, 정치적으로는 중국편을 들었다. 베트남은 현재 탈중국하고 있는 구글 및 애플 등 양질의 미국 글로벌 기업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미국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양국의 경제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내심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미국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사안에서는 다르다. ‘홍콩보안법’은 중국 입장을 지지했다. 베트남은 지난 5월 28일 ‘홍콩보안법’이 중국 전인대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외교부 성명을 통해 “중국의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 가지 제도)를 존중하고 지지한다“면서 ”홍콩 사안은 순수하게 중국 내정이며, 베트남은 홍콩이 안정과 번영 발전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중국의 ‘홍콩보안법’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나라는 사실상 베트남과 북한이 유일하다.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베트남이 중국을 지지하고 나선 것에 대해 미국은 서운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 문제 만큼은 과감하게 중국편을 들었다. 같은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입장에서 공산당 정권 공고화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도 베트남은 중국의 야욕을 강하게 비판하지만 대놓고 중국 국가명을 거명하지는 않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자국에 도움이 되는 미국의 개입을 내심 환영하고 있지만 군사·정치적 사안에 있어서 만큼은 공식적인 중국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자칫 일방적인 미국편들기 이미지를 조성하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북미 회담 개최 성사에서도 베트남의 전략적 행보를 읽을 수 있다. 베트남은 하노이 회담 개최를 통해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북한은 중국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봤을 때, 베트남은 북한을 매개로 이미 오래전부터 미중 사이 철저히 중립노선을 택하며 양쪽의 중재 역할을 자임했다고 봐야한다. 경제는 미국, 정치는 중국편을 들며 실리를 챙기고 있고, 갈등의 중재 역할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위험할 수도 있는 이런 줄타기 속에서도 미국과 중국 어느 쪽으로부터도 보복을 당하거나 비난을 받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도 중국도 베트남에 대해서는 어떤 제재 조치나 비난 성명을 내지 않고 있다. 참 대단한 외교술이다.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기계적인 중립노선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중립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이고 대담한 실리외교인 셈이다. 이는 ‘눈치보기 중립’이 아니라, 자신감과 세밀한 전략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주도적 중립’이라고 해석할만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먼저 역사적 배경을 참고해야 한다.
베트남이 일본 호주 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명확히 구분되는 점은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직접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들 강대국을 상대로 사실상 베트남이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것도 아주 먼 옛날이 아니라 1970년대에 벌어진 일이다.(미국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1973년 평화협정을 맺고 철수했다. 중국은 1979년 중국이 후원하던 캄보디아를 베트남이 점령하자, 북부지역을 침공했지만 교전 끝에 한 달 만에 물러섰다) 미국, 중국은 물론 프랑스, 일본 등 그 많은 강대국과 그 많은 전쟁을 치르고도 지금의 통일 베트남을 이끄는 것은 단순히 얻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즉 미중을 모두 전쟁에서 이긴 경험을 토대로 배짱외교가 가능한 배경을 갖고 있다. 최악의 경우 잃을 것도 별로 없고,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갈 것이고, 국익과 실리 중심으로 가겠다는 자신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두 번째로 지정학적 이점이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만의 이해관계 대립이 아니다. 일본 및 미국의 이해와도 직결된다. 이 지역을 중국이 차지하면 일본 및 미국 역시 태평양 주도권을 중국에 뺏기게 된다. 베트남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일본과 미국은 알아서 나설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 굳이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있다. 미국이 대리전을 치러주고 있는 셈이다. 미중 갈등이 깊어질수록 베트남의 남중국해 이권은 더욱 보장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베트남은 그저 가만이 있고 중립을 지키겠다고만 하면, 미국이 알아서 국익을 챙겨주는 형국이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로 독특한 베트남 국가체제 특성이 ‘주도적 중립’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베트남의 정치는 사회주의 공산당 체제이기 때문에 어떤 가치와 명분에 앞서 이 체제를 지켜야한다. 따라서 중국의 ‘홍콩보안법’은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체제가 위험해지는 것은 베트남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좋아서가 아니다. 중국의 공산당 체제 위기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정치분야(사회주의 및 공산당)는 미국이 개입해서는 안된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개인 인권문제가 베트남 정치에 들어와서는 안된다. 따라서 정치체제가 같은 중국을 지지하는 것이다.
베트남 경제는 시장경제를 표방하고 있다. 미국의 시장경제 모델은 더욱 확대되어야 베트남 경제가 부흥한다. 이는 80년대 개방정책 실행 이후 몸으로 체득한 사실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는 미국을 지지해야. 한다. 특히 미중 갈등으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서방국가들의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탈중국 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베트남으로 공장 이전을 하고 있다. 사업하기 좋은 안전한 시장경제 체제를 공고화해야 이들 기업들의 투자를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경제분야(제조업 및 외자유치)는 중국과 경쟁관계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는 미국을 지지해야 한다. 이러다보니 미국의 베트남 투자는 최근 더 강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국은 베트남 투자를 꺼리고 있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는 중국 위안화가 맹위를 떨치고 화교경제 영향력이 크지만 베트남에서는 그렇지 않다. 베트남에서 한국과 일본 기업들이 중국의 빈틈을 차지하며 활발히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네 번째로 베트남의 이런 중립 입장을 미국과 중국 모두가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중국을 지지하는 것은 미국이, 경제적으로 미국을 지지하는 것은 중국이 나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입장과 상황을 그대로 미중 양국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베트남에 대한 미중의 구애 작전이 더 치열한지도 모르겠다.
베트남은 미중 갈등이 격화될수록 몸값이 올라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 모든 러브콜을 아주 자연스럽게 베트남은 수용하고 있고, 세계 무대에서 그대로 양쪽을 모두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이 와중에 베트남은 완전한 꽃놀이패를 즐기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미중 갈등이 커지면 커질수록 베트남의 정치경제적 이득 역시 더욱 커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패를 가진 나라는 전 세계에 사실상 베트남이 유일하다.
그럼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지금, 한국은 베트남과 같이 중립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최근 “미국은 우리 동맹이고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역내 무역 파트너 중 하나라는 사실, 즉 한국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안보 관점에서 (한·미)동맹에 기대고 있고, 경제 협력 관점에서 중국에 기대고 있다”면서 “한 나라가 안보만으로 존속할 수 없고 경제활동이 안보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중립노선의 뜻으로 읽힌다.
베트남(경제는 미국, 정치는 중국)과는 반대의 중립노선인데, 실제 이런 중립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 중요한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다.
《유은길의 진짜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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