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배신④] 갈등만 부추기는 '비정규직 제로'

입력 2020-09-11 14:42
<앵커>

한국경제TV가 기획으로 보도해 드리고 있는 정책의 배신, 네 번째 다뤄질 내용은 '비정규직 제로화'입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숫자는 줄였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태학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청원에 35만명이 넘게 서명하며, 6월부터 꾸준히 논란이 돼 온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청와대는 "정규직 전환 결정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노사 간 충분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실책을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표했지만 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급하게 정책을 진행하다 보니, 채용 전환 시 공정성과 이후 처우를 놓고 노노 간은 물론이고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직원 간 대립 속에 노동조합은 사분오열돼 2개에서 5개로 늘어났고, 공사와 노조 간 협의를 위해 만든 자문단은 참여가 저조해 진행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공사의 막무가내식 태도는 직원들의 원성만 샀습니다.

[인터뷰] 장기호 /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위원장

법적 문제 해소를 위해서 자회사로 편제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는데, 6월 21일에 또 일방적으로 (직고용) 발표를 한 거예요. 우리 직원들의 의견도 묻지도 않고 합의서에 반하는 내용을...과정도 공정하지 못하고...

기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이익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상황입니다.

공사의 경우 기획재정부 예산 안에서 인건비를 정하는 '총액인건비제'의 적용을 받는데, 한정된 재원 안에서 인원이 늘어나면 피해를 보는 기존 정규직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렇게 기존 직원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정책을 진행하면서도, 마땅한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직원 47명이 전환 과정에서 직장을 잃었고, 이를 비롯한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원하지만 정부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터뷰] 공인수 /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운영노조 위원장

공사 측에서랑 정부 측에서는 시간이 없다고만 하고, 단기간에 대화를 끝내려고 하니까. 그거는 진정성 있는 대화라고 안 보거든요.

사실 무리한 정부 정책으로 파열음을 낸 곳은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만이 아닙니다.

과거 서울교통공사와 분당서울대병원도 노노 갈등을 겪었고, 한국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이 집단 해고되는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인터뷰] 박지순 /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원장

비정규직을 제로화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라고 봐야 되겠죠. 왜냐하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원인들이 있을 텐데, 그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기 보다 여러 가지 다른 상이한 문제의 원인을 갖고 있는 이슈들을 (비정규직으로) 너무 단순화시켜서 해법을 도출하려고 하는 그런 무리한 정책을 편 것이 지금 현재 비정규직 문제를 꼬이게 만든, 정작 당사자(노동자)들 조차 피해를 입게 되는 부작용이 많은 정책으로 귀결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결국 비정규직 제로화라는 실현 가능성 낮은 정책보다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처우 차이를 없애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합니다.

[인터뷰] 강성진 / 고려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비정규직을 하면 일을 오히려 더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규직에 비해서 임금이 떨어지는 여러 가지 차별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자꾸 정규직화를 한다는 거거든요. 근데 그 차별만 없어지면, 똑같이 가서 일을 하는데 똑같은 시간 일을 하면 똑같은 임금이 가고, 몇 시간만 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으면 굳이 정규직을 선호하지를 않죠.

전문가들은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슬로건에 매여 무리하게 정책을 밀어붙이다간 정작 노동자들은 없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한국경제TV 김태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