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발병 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 꼭 6개월이 됐다. 올해 세계 경제 10대 뉴스를 앞당겨 선정한다면 코로나 사태가 단역 톱 뉴스를 장식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BC(Before Corona)’에서 ‘AC(After Corona)’로 비유될 만큼 모든 분야에서 빅 체인지,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에서 피부로 체감할 만큼 가장 확실하게 나타나는 변화는 ‘세계화의 퇴조’다. 세계화의 속도가 둔화된다는 의미의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을 넘어 ‘탈세계화(deglobalization)’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 상품과 자본의 이동까지 제한되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퇴조 움직임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사태로 ‘효율성(기업 차원에서는 이윤 극대화)’을 중시하는 세계화에서 안정성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각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닥칠 변화를 감안해 글로벌 전략 등 모든 경제정책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
반면에 자급자족 성향이 더 강해지는 추세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범세계주의’보다 ‘보호주의’가 힘을 얻어가는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아예 ‘수출’보다 ‘내수’, ‘오프쇼오링’ 보다 ‘리쇼오링’, ‘아웃소싱’보다 ‘인소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극우주의 세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자급자족 성향이 중시되는 과정에서 앞으로 더 주목되는 변화는 각국이 세계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일본, 유럽 등 모든 국가가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종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세계 공급망의 중심지가 될수록 자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국민의 경제생활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는 세계 공급망의 개념을 따져보면 그 답이 나온다. 세계 공급망이란 ‘기업 간 무역’과 ‘기업 내 무역’으로 대변되는 국제 분업 체계를 말한다. 이 개념에 충실한 개편안은 종전 세계 공급망의 중심국 기업 간의 거래를 차단하고 본국으로 환류되는 기업 간의 거래를 더 촉진시키면 된다.
가장 앞서가는 미국의 세계 공급망 재편 구상인 ‘경제협력 네트워크(EPN)’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런 내용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계화 시대에 공급망 중심국인 중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화웨이 등 핵심 기업과 미국 기업과의 모든 거래를 차단했다. 삼성전자 등 제3자 기업을 통한 거래, 즉 세컨더리 보이콧도 병행하고 있다. 한마디로 ‘죽이기 전략’이다.
세계화가 퇴조됨에 따라 기축통화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Fed)은 1913년 설립 이래 가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정크 본드 등 매입 대상을 가라지 않고 무제한 달러화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인 최종 대부자 역할을 포기한 셈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Fed는 초당 100만 달러씩 풀어내고 있다. 달러화 공급이 많을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은 경상수지적자를 통해 달러화를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의 주장이다.
Fed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지마자 달러 가치가 폭락할 것이라는 시각이 곧바로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3’대에서 ‘93’대로 급락했다. 2년 만에 최저치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자인 래이 달리오는 달러화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축통화로 달러화 위상이 흔들림에 따라 중국을 비롯한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탈달러화 움직임이 빨라지는 추세다. 언택트(비대면)와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도래됨에 따라 각국이 디지털 통화를 앞당겨 도입하고 있다. 국제통화질서에 일대 지각변동을 초래할 새로운 움직임이다.
주력산업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알파 라이징 종목’의 부상이다. ‘알파 라이징 종목’이란 현존하는 기업 이외라는 관점에서 ‘알파(α)’가, 코로나 사태 이후 더 떠오른다는 의미에서 ‘라이징(rising)’이 붙은 용어다. 클라우드, 온디멘드. 리모트, 온라인 스트리밍, 네트워크 5G, 인공지능 등의 첫 글자를 딴 ‘CORONA’ 종목이 대표적이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즉 BOP(bottom of the pyramid)관련 종목도 부상하고 있다. BOP계층은 세계 인구(74억명)의 72%인 50억명에 이를 만큼 많은 데다 평균소비성향(소득대비 소비비율)이 높아 시장규모도 10조 달러가 넘는 거대시장으로 성장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음식료와 재생업종 주가가 크게 오르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시장경제가 무너지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경합성’과 ‘배제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경합성이란 특정 재화를 차지하지 하기 위한 시장 참가자 간 경쟁을, 배제성이란 가격을 지불한 시장 참가자만이 특정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전제가 무너질 경우 자원 배분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시장의 실패’다.
정부가 나서는 것도 이때다. △시장 참가자, 제품의 질, 정보 대칭성이 잘 지켜지지 않는 독과점 시장이거나 △경합성과 배제성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공공재 △사적비용(P)과 사회적비용(S) 간 괴리를 발생시키는 ‘외부성’(P>S이면 ’외부경제‘, P
경제학의 기본전제인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가정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는 움직임도 주목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돈이 많이 풀리면서 제품 가치와 가격 간 괴리가 너무 심하게 발생함에 따라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전제가 시장에서 깨진 것으로 비춰진다. 결과(pay-off)가 크게 차이가 나는 코로나 이후 빅 게임에서는 제품 가치에 비해 돈을 많이 번 기업인은 ‘대박’, 돈을 많이 지불한 소비자는 ‘쪽박’을 찬다. 주식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모든 제품은 갖고 있는 ‘가치’대로 ‘가격’을 받아야 기업인은 창조적 파괴 정신이 고취되고 소비자는 공짜 심리가 사라지면서 합리적인 소비행위가 정착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에 맞게 시장조성 여건과 경제주체의 역할이 재조정돼야 ‘자원의 희소성 법칙‘의 본질이 살아나면서 시장경제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다. 과연 시장경제는 언제 복원될 수 있을까? 혹시 연원히 복원되지 않을까 두려워지는 것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움트는 또다른 변화다.
● 코로나 사태 6개월, 세계 경기와 증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경기순환 국면을 판단하는 가장 종합적인 지표인 국민소득 통계가 193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츠네츠에 의해 개발된 이래 코로나 사태처럼 경기 앞날을 보는 시각이 엇갈리는 경우는 없었다. ’I‘자형, ’L‘자형, ’W‘자형, ’U‘자형, ’V‘자형에 이어 ’나이키형‘까지 나올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예측 시각이 나왔다.
코로나19가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 1월 중순 이후 세계 증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누니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1930년대 대공황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I’자형의 극단적인 비관론을 제시했다. 반면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코로나 백신 개발이라는 조건을 달았긴 했지만 조기에 회복할 것이라는 ‘V’자형으로 반박했다.
세계적인 석학 간에 경기 앞날을 보는 시각이 엇갈리게 만든 것은 코로나19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로 분류되는 코로나19는 발병 원인과 시기, 진행 방향, 그리고 치료제와 백신 개발 등 그 어느 하나 확실하지 않는 ‘아무것도 모르는(Nobody Knows, NK)’ 리스크다.
루비니 교수를 비롯한 비관론자가 결정적으로 실수한 것은 NK 리스크는 위험요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주가는 지난 3월 중순 이후 50% 가깝게 올랐다. 세계 증시를 주도했던 테슬라와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의 주가는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등 전통적인 주가평가지표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바이오 업종의 평균 PER은 200배를 웃돈다.
경기는 경제활동 재개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다르다. 지난 4월 들어서자마자 경제 활동을 재개한 중국 경제성장률은 올해 1분기에 -6.8% 수준까지 추락한 이후 2분기에는 3.2%로 수직 반등했다. 지속 여부는 3분기 이후 성장률이 어떻게 나오느냐를 지켜봐야겠지만 시진핑 국가주석도 놀라워했을 만큼 ‘V’자형 회복이다.
반면 경제활동 재기시기가 가장 늦었던 미국 경제는 올해 1분기 -5% 역성장한데 이어 이달 말에 발표될 2분기 성장률은 -30% 내외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분기 성장률을 놓고 본다면 대공황 때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도 2분기 성장률이 -3.3%로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3분기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3월 1차 논쟁 때와 마찬가지로 2차 논쟁 때도 두 가지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올해 3분기에는 기저 효과 등으로 잠시 회복세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된다는 ‘W’자형과 2분기를 저점으로 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V’ 혹은 ‘U자형 시각이다.
1차 논쟁 때와 다른 것은 극단적인 비관론인 ’I’자형과 ‘L’자형 시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2차 논쟁 때 비관론인 ‘W’자형의 근거로 삼는 코로나19가 2차 대감염이 발생하더라도 1차 대감염 때보다 학습 효과로 당황하지 않으면서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 등이 일상화됐다. 코로나 백신 개발 시기도 1차 대감염 때보다 다가왔다.
최악의 경우 2차 대감염에 따라 경제활동이 재봉쇄된다 하더라도 각국 중앙은행이 코로나 사태가 극복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풀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1차 대감염 때보다 완충능력이 확보된 상태다. 1차 대감염 이후 주가가 크게 오른 것에 따른 ‘자산 효과’도 기대돼 ’W’자형의 두 번째 저점은 첫 번째 저점보다 높게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한국경제TV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