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시·건축 이야기를 한국경제TV 전효성 기자와 함께 들어봅니다. 방송에 모두 담지 못한 숨은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합니다. <편집자 주>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수도를 세종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숱한 부동산 대책에도 서울 집값이 잡히지 않자 수도를 옮기자는 구상을 내놓은 셈이다. 최근 인터뷰를 통해 만난 마강래 교수(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청와대, 국회, 행정기능이 옮겨간다고 해서 기업과 청년이 지역으로 옮겨갈 거라는 생각은 서울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수도 이전 논의를 꺼내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균형 발전은 어떤 모습인지부터 논의하는 게 우선"이라고 언급했다.》
Q. 최근 '세종으로 행정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도시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일자리다. 기업이 옮겨가고 일자리가 생기면 젊은 인구가 유입된다. 젊은 인구가 들어오면 이들의 생활을 뒷받침해줄 교육, 문화, 행정기능이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도시발전의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방식은 이와는 다른 것 같다. 행정기능을 먼저 옮기고 이를 마중물 삼아 기업을 유치한다는 논리다. 행정기능은 정부가 결정하면 이전할 수 있다. 공공기관도 정부 의지대로 옮길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민간의 영역이라서 '내려가라', '내려가지 마라' 할 수가 없다. 기업 활동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 놓고, 어떤 인센티브를 줄지 고민을 해야 기업이 내려간다.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층이 유입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줘야 한다. '일단 행정기능만 내려보내고 보자'는 방식은 금방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Q. 이번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정치권에서부터 시작됐다.
"최근 수도권 집값이 너무 빠르게 상승을 했다. 부동산 민심도 좋지 않았고 정치적 부담도 있을 거다. '집값 안정책 일환으로 수도 이전 논의를 꺼낸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세종시를 보면 지금도 '행정수도'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행정기능이 가장 밀집된 공간이 현재의 세종시다. 여기에 청와대·국회까지 옮기고, 대통령께서 집무도 본다면 그건 '수도 이전' 논의가 된다. 수도 이전 논의를 이렇게 급하게 해야 하나? 백년대계, 우리나라의 존망과 관련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를 이렇게 급하게 논의한다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Q. 수도 이전이 현실화한다면 서울의 과밀화는 해소될까.
"혁신도시를 살펴보면 될 것 같다. 전국 10개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이 많이 이전했다. 세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종시와 혁신도시가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했나? 오히려 수도권 인구집중은 계속됐고 전체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있다. 추가적인 공공기관을 이전한다고 해서,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에 옮겨놓는다고 해서 수도권 과밀화가 한순간에 해소될 거라고 보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인구이동을 이끄는 것은 일자리다. 공공기관과 행정기능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다. 민간 기업 이전 전략을 먼저 세우고 거기에 행정기능까지 더한다면 효과가 크겠지만, 지금 상태의 계획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수도 이전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균형 발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해야 한다. 균형 발전의 이상향을 그려야 한다. 그런 고민이 없는 상황에서 정책을 추진하면 언제는 부산을 중심으로, 어떤 때는 세종을 중심으로, 어떤 때는 226개 지자체에 공평하게… 그때그때 다른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국토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Q. 수도권 과밀화는 분명히 해소해야 할 문제다. 대안은 없을까.
"수도권은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방에도 수도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대도시권'을 만들어야 한다. 뭉치기 전략, 압축전략이 필요하다. 대전·세종이든, 광주·전남이든, 대구·경북이든 수도권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대도시권을 세워야 한다. 과거 수도권이 우리나라 발전을 이끌었던 것처럼, 지역 대도시권은 지역 발전을 견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통망을 짤 때도 지역 거점도시와 주변 도시가 연계성을 고려해서 설계해야 한다. 개발사업을 추진할 때도 여러개 사업을 묶어서 함께 추진하는 방식도 도입돼야 한다. 지역 대도시를 중심으로 압축전략을 세웠을 때 지역에서도 융복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서울·수도권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서울에 살고 싶은 이유는 일자리가 있을 뿐 아니라 교육, 문화, 의료 등 여러 기회가 융복합돼있기 때문이다. 융복합된 곳은 각각의 특성을 더한 것보다도 시너지가 크게 나타난다. 서울 인구집중은 이런 융복합 환경을 찾아서 이동하는 인구다. 만약 행정수도를 이전한다고 해도 융복합에 대한 고민 없이 행정기능만 옮겨간다면 반쪽짜리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시너지 효과도 제한적일 거다."
Q. 수도 이전 논의가 나오면서 국토 균형 발전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균형 발전의 핵심 키워드는 뭐라고 보나.
"연령대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가 핵심이라고 본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맏형이 1955년생인데 이들이 올해 65세다. 본격 은퇴 행보를 걷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촌향도(離村向都: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함)를 주도했다. 1,700만 베이비부머 세대 중 800만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데, 이 중 440만명 정도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다. 문제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동산을 엄청나게 매입했고, 은퇴한 이후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은퇴하면서 집을 팔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통계를 보니까 부동산을 계속해서 사들이고 있다. 무주택인 베이비부머 세대는 어떻게든 도심에 집을 사려고 한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인구 계층이다 보니까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핵심 세력이 되고 있다.
반면 청년층은 밀려나고 있다. 과거 일자리는 도심 밖에 위치했다. 공단, 산단이라는 이름으로 도시 외곽에 일자리가 있었다. 굳이 도심에 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첨단산업, 지식기반산업이 성장하면서 일자리가 도심으로 점점 더 모여들고 있다. 산업은 도심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집값이 비싸다 보니 청년층은 오히려 도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직장과 주거지가 멀어지는 현상이 청년들에게 나타나고 있다. 생산력이 가장 높은 연령층인데 말이다. 결국 베이비부머 세대가 도심에서 빠져줘야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층에 희망이 생긴다."
Q. 베이비부머 세대가 도심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어떻게 보면 세대갈등으로 비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대를 갈라놓고자 하는 게 아니다. 베이비부머의 상당수가 은퇴했거나 은퇴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들이 소득이 줄면서 생활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 거다. 도시에 계속 머물다가는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베이비부머가 고향으로, 지방으로,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간다면 인구수가 두터운 층이기 때문에 충분히 생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이동한 세대인 만큼 고향에 대한 향수도 적지 않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지방으로 향한다면 이들을 위한 산업도 형성될 거다.
어떤 사람들은 '지방에 청년을 유입해야지 은퇴 세대를 유입하는 것은 지방에 불리하다'고 말한다. 물론 지방에 청년을 유입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굉장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인구수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단기적 목표가 돼야 한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유치하는 것이 지방 활성화의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고, 고향에 친지와 친구가 남아있을 때 지역별로 유치전략을 잘 세워서 일단 인구의 양을 확보해야 한다.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모여들면 그에 맞는 고령 친화 산업이나 서비스가 지역에서 활성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고 청년이 유입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차적으로는 베이비부머 세대를 유치해서 지방을 활성화하고, 두 번째는 이를 보조할 청년층을 이끄는 것이 바람직한 지역 균형 발전 전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