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80㎜의 기록적 폭우가 내린 지난달 23일, 부산 동구 초량 제1지하차도 침수로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가 발생했다.
관할 지자체는 사고가 난 뒤에야 지하차도 침수 대비 매뉴얼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게 됐다고 털어놓으며, 부실한 재난 안전 관리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부산 동구 안전도시과가 만든 '지하차도 침수 대비 매뉴얼'을 보면 호우경보가 발령되면 지하차도 진·출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차량 통행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폭우 당시 차량 통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지하차도에 진입한 차들은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차량 통행만 막았어도 3명의 시민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하차도 침수대비 매뉴얼이 만들어진 것은 2014년이다. 그해 8월 부산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가 침수되는 바람에 차에 있던 2명이 숨진 사고가 계기였다.
부산 지하차도 침수 사고 사례처럼 지자체마다 재해·재난 예방 지침과 문서화된 대책이 있지만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지자체의 무관심도 한몫하고 있다.
오목하고 지대가 낮은 항아리 지형으로 2010년과 2011년 국지성 집중호우 때 침수됐던 서울 강남역도 이번 집중호우 때 다시 물바다가 됐다.
5년 전 서울시가 강남역 인근 역경사 하수관 흐름 개선, 빗물 저류조 유입관로 추가 신설 등을 핵심으로 하는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 개선 대책'을 내놨지만, 나아진 점은 없었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 물난리도 비슷한 경우다. 2018년부터 3년 연속 침수피해가 발생하자 주민들은 지자체 재난 대책이 미흡해 물난리가 되풀이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18년 태풍 '콩레이'로, 2019년엔 태풍 '미탁'으로 마을이 잠겨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인명피해와 엄청난 재산피해가 발생해 화전천을 정비하고 배수펌프장 용량을 늘리기로 했지만, 올해 집중호우에 여전히 속수무책이었다.
하천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관리부실로 큰 피해가 난 사례도 있다.
이번 여름 폭우 때 시가지가 3년 만에 물에 잠긴 충북 음성군 삼성면 주민들은 "저지대라 적은 비에도 크고 작은 침수가 반복되는데, 하천 정비가 안 돼 침수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자체를 원망했다.
주민들은 "상류 지역 저수지에서 물을 빼지 않다가 한꺼번에 많은 물을 흘려보내는 바람에 소하천이 감당을 못한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최근 물바다가 됐던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 아파트는 30여년 전 관할 구청의 준공검사를 받지 않은 무허가 아파트여서,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해 침수 피해가 컸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를 고려해 자연재해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권순철 부산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라 쉬지 않고 내리는 폭우에 대비해 자연재해 저감 종합계획을 재수립해야 한다"면서 "도심엔 빗물 저류지를 만들어 빗물을 분산 배수하고, 물난리가 반복되는 농촌에는 위험 시설 점검을 강화하고 재난 대응 매뉴얼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지자체들이 작성한 재난·재해 관련 매뉴얼은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작성된 것이 아닌 점도 문제"라며 "지역별 취약성을 진단 평가하는 것을 제도화하고, 평가에서 나온 재해나 재난에 대한 취약성을 중심으로 예방사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