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후 피해자 A씨 측이 밝힌 피해사실과 관련해 '나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이 여권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남성 의사는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 모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박 전 시장이 벗어둔 속옷을 수거하거나 침실에서 그를 깨우는 등 매우 개인적인 일까지 해왔다는 추가 폭로가 피해자 측에서 나온 것을 두고, 이 의사는 자신의 병원에서도 속옷 빨래 심부름이나 신체 접촉 등이 있었지만 간호사들이 불쾌해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피해자의 경험이) 과연 기쁨조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일이었나. 왜곡된 성역할 수행을 강요받은 것이라 생각할 정도로 수치스러울 일이었나"라고 물었다.
이 글은 19일 오후까지 4천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으며 널리 읽혔다. 1천회가 넘는 공유 중에는 비판도 있었지만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며 공감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트위터 등에서는 "성추행 정도로 죽을 것이라면 대한민국에 안 죽을 남자 없다"는 글과 이를 비판하는 입장이 며칠째 공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는 "'나도 그랬는데' 같은 반응이 줄지어 올라오는 것 자체가 한국사회의 성인지 감수성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부하에게 이 정도 잔심부름은 시킬 수 있고, 그 정도 친근감은 표시할 수 있다는 안일한 인식이 '미투'가 계속 터져 나오게 한 근본적인 토대"라고 지적했다.
이와 유사하게 피해자 측을 겨냥하는 듯한 주장은 여성으로부터도 나왔다.
평소 검찰개혁 등 사안에서 공개적으로 여권 지지 의사를 밝혀온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는 지난 13일 "자수한다. 팔짱을 끼는 방법으로 성인 남성 두 분을 동시에 추행했다"며 페이스북에 박 전 시장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진 검사는 "페미니스트인 제가 추행했다고 말했으니 추행"이라며 이를 "권력형 다중 성범죄"라 불렀다. 피해자 A씨 측이 "본 사건은 고위공직자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라고 한 것을 빗댄 셈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15일 "피해자에게 온당치 않은 방식으로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며 진 검사의 징계를 촉구하는 공문을 대검찰청에 보냈다. 정의당도 사과를 촉구했다.
그는 피해자 조롱이라는 비판에도 이후 올린 글에서 "방송도 해 주시고, 무료로 광고도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윤김지영 교수는 진 검사의 글에 대해 "피해사실을 부정하거나 수위를 낮춰 표현하는 전형적 2차 가해"라고 평가하며 "'다 일상적인 것이고 범죄가 아니다'라는 것인데, 나중에는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게 되는 논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진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일단 지지하는 식으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행동까지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