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해도 못 걸어"…'햄버거병' 후유증에 속 타는 가족들

입력 2020-07-12 13:57
수정 2020-07-12 23:44
햄버거병 진단 받은 일부 아이들 고혈압 약 처방


"다람쥐같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딸이 병원에서 퇴원한 지금은 뒤뚱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해요."

한 달 전인 지난달 12일 안산 A 유치원에서 첫 집단식중독 환자가 발생한 후 총 118명의 유증상자가 확인됐다.

이 중 69명은 장 출혈성 대장균 양성 판정을 받았고, 16명은 합병증인 용혈성요독증후군(HUS·일명 햄버거병) 진단을 받았다.

12일 현재 입원한 36명 중 34명(10일 기준)이 퇴원한 상태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A 유치원 집단식중독 피해 아동인 B(4) 양의 엄마 C(43) 씨는 지난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이가 3주간 입원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말하는 거며, 행동하는 게 쌍둥이 동생과 비교해 너무나도 달라져 버려 보고 있으면 속이 타들어 간다"고 했다.

B 양은 A 유치원 7세 반에 다니던 언니로부터 장 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달 10일부터 언니와 한 욕조에서 함께 목욕한 것이 유력한 감염 경로라는 게 보건당국의 진단이다. 욕조 밖 대야에서 혼자 목욕했던 B양의 쌍둥이 동생에게선 장 출혈성 대장균이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 씨는 B 양이 복통과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난 달 14일까지도 유치원으로부터 별다른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아이의 증상이 심각해졌고, 급기야 심한 혈변이 나오기 시작해 고려대 안산병원 응급실에 갔다가 장 출혈성 대장균 합병증인 용혈성요독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C 씨는 "그 작은 양손과 양발에 수액, 수혈 등을 위한 각종 바늘 10개와 소변줄을 꼽고 있던 모습, 배에 구멍을 뚫고 투석 장치를 끼우기 위해 전신마취하고 수술실에 들어가던 모습, 금식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아이가 배고프다며 먹고 싶은 음식을 줄줄 외우던 모습까지 3주가 지난 지금도 입원 당일부터 하루하루, 매 순간이 아프도록 생생하다"고 했다.

투석 치료를 받은 B 양의 컨디션은 조금씩 좋아졌고 지난 7일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하지만 C 씨는 퇴원만 하면 끝날 줄 알았던 고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C 씨는 지난 9일 아이와 다시 병원을 찾았다. 피, 소변검사를 하고 빈혈 등 각종 수치가 1주일 전보다 나아졌다는 설명을 듣고 안도한 것도 잠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험한 숫자가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혈압을 쟀는데, 비슷한 연령대 소아의 고혈압 기준(수축기 기준 100∼110mmHg)보다 다소 높은 123mmHg이 나와 고혈압약을 처방받아야 했다.

C 씨는 "약을 먹고 나면 식은땀을 흘린다"며 "어른들도 잘 먹지 않는 약을 먹어야 해서 걱정이고 무엇보다 일시적인 증상이 아닐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담당 의사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일 년간 추적 치료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B 양 외에도 햄버거병 진단을 받은 아이들 중 고혈압으로 약을 처방받은 아이들이 더 있다고 했다.



A 유치원을 다니던 두 아이가 장 출혈성 식중독과 용혈성요독증후군으로 치료를 받은 안현미 씨도 아이들이 후유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안 씨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다 나아서 퇴원한다고 생각하는데, 병원에서 해줄 치료가 없어서 나가는 것일 뿐"이라며 "아이들은 여전히 어지럼증과 복통, 코피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름간 입원 후 집으로 온 다섯살짜리 막내가 자면서 소변을 가리지 못하곤 한다"며 "입원했던 아이 중 다시 기저귀를 차는 아이가 여럿 된다"고 했다.

또 "자다가 갑자기 깨서 '싫어, 하지마'를 외치며 울부짖기도 하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가도 다시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워서 그런지 이내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한다"며 "여러 개의 주삿바늘, 반복되는 채혈 등으로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A 유치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한 안 씨는 "아이들이 되돌아갈 유치원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다니던 곳에서 같은 친구들을 만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데 학부모 90% 이상이 현재 설립자(이사장) 겸 원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보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A 유치원 비상대책위 측은 얼마 전 이런 학부모들의 의견을 원장에게 전달했고, A 유치원은 현재 온라인 구인 사이트에 원장 및 교사 채용 공고를 띄운 상태다.

안 씨는 "원장만 새로 뽑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이사장이기도 한 현 원장이 아예 유치원에서 손을 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 유치원 측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씨는 "원생 절반 정도가 식중독 증상을 보이고 16명이 햄버거병에 걸렸는데, 원인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미스터리로 묻히면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다시 이런 엄청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원인을 찾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감시하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B 양 엄마 C 씨도 "엄마들이 원하면 언제든 유치원 급식실을 공개하도록 하는 점검 기능이 의무화됐으면 좋겠다"며 "또 외부기관에서 유치원 먹거리를 철저히 관리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