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 도입 놓고 트럼프와 파월 간 갈등…하반기에는 더 심해진다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0-06-15 10:17
수정 2020-06-15 10:17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 고용 창출과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져갈 수 있는 정책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준금리를 노멀 스텝 방식, 즉 0.25%포인트씩 조정하는 ‘기준금리 정책’과 국채를 매입하거나 혹은 매각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공개시장 정책’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 국면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비전통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금리 정책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서너 단계씩 내리는 빅 스텝 방식으로 제로(0) 혹은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린다. 공개시장정책도 조작 대상을 넓히고 목표가 도달할 때까지 대상 채권을 무제한 사주는 양적완화를 추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로 분류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지구상에 어두운 질병 문제이기 때문에 초기 충격이 크고, 경제주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맞아 현금 확보부터 나선다. 각국 중앙은행이 코로나19 발생 직후 비상 체제로 돌아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임시 회의를 계기로 미국 중앙은행(Fed)는 1913년 설립 이래 가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중앙은행의 가장 큰 기능인 ‘최종 대부자 역할(lender of last resort)’까지 포기하고 있다. 공개시장 조작 대상에 국채뿐만 아니라 회사채, 심지어는 넣어서는 안 될 정크 본드까지 포함시켰다.



코로나 확진자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자 올해 11월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활동을 서둘러 재개하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성급한 경제활동 재개로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할 경우 공개시장 조작에 더 이상 포함시킬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점이다. 최후 유동성 공급 대책으로 만기 50년 이상 영구채(console)를 발행해 중앙은행이 사주는 ‘국채 화폐화’ 방식이 있으나 부작용이 커 추진하기가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5년 전부터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를 중심으로 기준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극단적인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 제도는 은행이 자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해 쉽게 영업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출을 도모하라는 취지에서 추진된 비상조치다.

ECB와 BOJ의 실증 사례를 보면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민간 예금의 마이너스 금리로 귀착된다. 민간이 예금할 때 마이너스 금리인 수수료를 낸다면 여유 자금을 은행에 예치하기보다 소비하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상황이 발생했다. 오히려 이 제도 도입 이전에 예치했던 예금까지 인출돼 퇴장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융권에서 돈이 아예 퇴장된다면 경제 활력은 더 떨어진다. 마이너스 금리제 도입 이후 유럽,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활력지표인 통화유통속도(국내총생산(GDP)/통화량(M2))와 통화승수(통화량(M2)/본원통화량)가 지속적으로 떨어져왔다. 마이너스 금리제를 검토해 왔던 Fed도 이 대목을 가장 고민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는 정책무력화 명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통화정책의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경제주체가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함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간의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통화정책 전달경로(통화공급→금리인하→총수요 증가→경기회복)’가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다.

금융위기 이후 제로(0) 혹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기준금리를 정상화시키는 출구전략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여건에서 코로나 사태를 맞이했다. 기준금리는 이제 내리고 싶어도 더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다. 테일러 준칙 등 어떤 방안으로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기준금리는 적정수준에 비해 크게 낮게 나온다.



항상소득가설(밀턴 프리드먼), 생애주기가설(안도·모딜리아니) 등 소비 이론에 따르면 기대소득(항상소득)이 높아져야 가계는 소비를 늘릴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는 기대소득을 낮추는 요인으로 소비보다 오히려 저축을 늘리는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난다. 지급 문제를 놓고 논란이 많았던 코로나 긴급재난 지원금도 임시 소득으로 경기부양 효과는 크게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 일본이 경기부양 차원에서 지급했던 상품권이 선행 사례다.

극단적인 처방인 마이너스 금리제가 의도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수단이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달 중순에 열렸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웹세미나에서 제룸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을 거부하면서 마이너스 금리제보다 더 좋은 제3의 방안이 있다고 발언해 Fed가 다음에 내놓을 통화정책 수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검토해 왔던 '금리 상한제(yield cap)'다. 2차 대전 직후 사용했던 금리와 공개시장 정책을 묶은 이 제도는 양적완화 대상에 목표 선을 설정해 놓고 그 이상으로 금리가 올라갈 경우 자동적으로 대상 채권을 매입해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도 공급한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전통적인 통화론자가 주장한 ’통화 준칙(monetary rule)‘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이 제도는 경제 주체가 인플레이션을 기대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채권 매입과 유동성 공급, 그리고 인플레이션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리 상한제 도입의 또 하나 근거로 삼고 있는 ‘수확체감의 법칙’, 즉 너무 많이 풀리고 금리가 낮으면 돈 경시 풍조로 통화정책 효과가 줄어드는 문제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마이너스 금리제가 효과가 없자 수익률 곡선(yield curve)을 직접 조절하는 방식도 제3의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수익률 곡선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기대 가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시장분할 이론’이 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에 따르면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위험이 높아 이를 보전해 줄 수 있는 프리미엄을 얻어줘야 수급 상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것이 정상이다.

시장 참여자에게 수익률 곡선은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을 때는 ‘단저장고’, 그 반대의 경우 ‘단고장저’라는 용어로 익숙해져 있다. 경기와 연관시킨다면 전자가 발생할 때는 ‘회복’, 후자가 발생할 때에는 ‘침체’로 받아들여진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이 방법을 통한 경기 판단과 예측이 잘 맞아 종종 경기부양수단으로 활용됐다.



코로나 사태 이후 대부분 국가는 수익률 곡선의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세계 경기 침체와 맥을 같이 한다. 단고장저의 수익률 곡선을 정상화시키는 데에는 단기채를 매입하는 것과 장기채를 매도하는 방안이 있다. 후자는 장기채 매도 과정에서 유동성 위축이 불가피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 유동성을 최우선적으로 공급하는 각국 중앙은행이 가져가기가 힘들다.

전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준금리를 제로(0) 혹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린 여건에서 수익률 곡선의 정상화만을 위해 단기금리를 정책금리보다 더 떨어뜨리면 정책금리의 시장금리 조절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장단기 금리조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각국 중앙은행 수장이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정정책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치 입을 맞춘 듯 각국 정부는 ‘뉴딜 정책’으로 화답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최악으로 몰리고 있는 경제를 회복시킨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통화정책이 무력화되는 것에 따른 궁여지책의 성격도 강하다. 두 목적 중 어느 것이 강하느냐에 따라 세계와 한국 경제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