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를 통과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국내에도 도입할 경우 최대 5조원 이상의 경제적 손실과 3만명 이상의 일자리가 감소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2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결과 발표 및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경제적 손실과 일자리 감소가 상당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구 결과 발표를 맡은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게임 산업의 축소로 그치지 않고 이에 대한 파급효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연관 산업의 축소가 될"이라며 "간접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전망했다.
■ 연평균 3조원대 산업 축소…일자리 3.4만개 사라진다
유 교수 연구팀은 게임과 유사한 산업으로 ▲담배 산업 ▲사행 산업(셧다운제) ▲만화 산업을 선정해 게임산업에 직접적으로 발생할 경제적 손실에 대해 예측했다.
이들은 유사 산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 될시 직접적으로 축소되는 경제 규모는 연평균 최소 1,052억원(사행산업 기준)에서 최대 3조5,206억원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간접 효과로 의료 관련 예산이 최소 약 50억원(과몰입 위험군 이상 사용자 대상)에서 1,132억원(전체 게임 사용자 대상)까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게임 중독 치유 부담금으로 약 7천억원이 발생하며 질병의 범주가 소셜 미디어 중독 등 타 인터넷 산업까지 확대될 경우 약 1,416억원의 부담금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게임산업이 축소될 경우 과학 및 기술관련 서비스업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며 다음으로 운수업, 사업지원 서비스업, 정보통신업 등이 영향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인해 총 5조 2,500억원 규모의 매출이 감소하고 3만4천여명이 취업 기회를 잃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모인 전문가들은 앞선 연구결과 등을 고려했을 때 질병코드 등재에 따른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과 추가적인 규제 발생 등으로 인해 치뤄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유 교수는 "개인의 보호 논리에 치우쳐 거대한 경제 침체 효과와 사회적 비용이 간과된다면 심각한 경제산업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파급효과와 향후 전망을 고려할 때 피해는 더 심각하고 일자리 감소 효과도 큰 만큼 경제적 부의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실장은 "산업 연관성을 고려했을 때 고용 감소 폭은 이번 연구 결과가 제시한 3만4천여명보다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게임 산업에 청년 연령대 종사자 비중이 높은데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청년층에 부정적 여파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 게임질병코드 1년…게임 VS 의료계 찬반 논쟁 여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국제질병사인분류 개정안(ICD-11)을 채택한 지 1년이 됐다.
전세계 게임업계와 게임 관련 정부기관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5월 '게임과몰입'을 질병으로 공식 인정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게임=질병'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국내에서도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두고 게임계와 의료계 간 찬반 논쟁은 여전하다.
과학적·의학적 근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만큼 게임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해서는 안된다는 게임계 의견과는 달리 의료계는 게임과몰입에 대한 진단 및 치료가 일부 이뤄지고 있는 점에 비춰 질병코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게임의 순기능이 부각되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일부 개선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지만, 게임을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않다.
의료계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WHO까지 게임을 권장하고 나섰지만 게임과몰입과는 별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의료계와 보건복지부 등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게임 인식개선 및 가치 제고를 위한 관련업계의 지속적인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 WHO가 게임에 대한 인식조차 변화가 생긴 시점에 의료계는 여전히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점이 아쉽다"며 "게임의 순기능이 잇따라 부각되고 있는 만큼 민관협의체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방안들이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 게임산업 육성…민관, 질병코드 대응 '속도'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앞두고 업계에서 논쟁이 여전하지만 일단 정부는 게임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통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문제에 대해 대응하고 게임 산업을 쇄신하는데 앞장서겠다고 공표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 7일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게임산업이 정보기술(IT)산업을 선도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장기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4대 핵심 전략과 16개 역점 추진과제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각종 낡은 규제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천명했다. 등급분류 관련 불필요한 심의를 줄이고 웹보드게임에 대한 하루 손실한도 제한 규정을 철폐하는 내용이 이번 종합계획에 담겼다.
올바른 게임문화 확산을 위한 민관 협력체계도 구축한다.
문체부를 비롯해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물관리위원회, 게임 협단체, 지자체 등이 대상으로 게임과몰입 관련 예방정책 수립·집행을 공동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실태조사 및 정책대안 개발 ▲상담, 교육 및 홍보 활동 ▲예방 관련 전문 인력 양성 ▲예방치유에 관한 연구 및 관련 프로그램 개발 ▲국제교류 및 협력 등에 나선다.
정부의 진흥 기조와 규제 완화로 게임업계에서는 기대감이 크다.
특히 6년 만에 발표된 게임산업진흥 종합계획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연이은 규제로 성장동력을 잃고 횡보하던 게임업계도 시장 활성화 기대 등에 한층 고무된 분위기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WHO가 게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정부 또한 진흥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오랜만에 게임업계에 순풍이 불구 있다"며 "게임의 가치를 인정받은 이 시기에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