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길리어드사이언스(이하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 임상연구 관련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전 세계가 말 그대로 들썩이고 있다.
아직 연구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중간 결과가 하나둘 나올 때마다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가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해왔던 항바이러스제다. 체내에 들어온 바이러스의 유전물질 복제를 막아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뉴클레오타이드 유사체다.
길리어드는 신종 인플루엔자(신종플루)의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만든 제약사다.
렘데시비르는 에볼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 여러 신종 바이러스 병원체에 대한 세포실험이나 동물실험에서 항바이러스 효과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 전 세계 어디에서도 코로나19는 물론 에볼라 치료제로도 공식 허가받지 못했다. 에볼라 환자에 처방된 적은 있으나 결국 최종 임상시험에서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에볼라 치료제 임상 실패 후 한동안 정체됐던 렘데시비르는 올해 1월 길리어드가 미·중 의료진과 코로나19 환자에 투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히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곧이어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난 3월부터 국내에서도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길리어드에서 신청한 임상 3상 2건과 서울대병원이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협력기관 자격으로 진행 중인 연구자 임상 1건 등 총 3건의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방역당국은 서울대병원에서 진행하는 렘데시비르 임상시험 결과는 이르면 이달 중순에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렘데시비르의 코로나19 환자 투여가 시작되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지켜보고 있다. 뚜렷한 코로나19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개발단계가 가장 앞서 있기 때문이다. 정보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현재 개발 중인 코로나19 치료제 중 렘데시비르가 가장 빨리 상용화될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단 연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하나둘 논문이 나오고, 심지어는 동료평가(peer review)도 받지 않은 결과가 공개되면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건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에서 진행한 연구다. 미국·영국·독일·스페인 등에서 코로나19 환자 1천70명에게 투여한 결과 환자의 회복 시간이 15일에서 11일로 약 31% 단축됐다. NIAID를 이끄는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지난달 29일(미국시간) 직접 나서서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긍정적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날 의학저널 랜싯(The Lancet)에는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 치료에 별다른 효과가 없었었다는 내용의 연구 논문이 공개됐다. NIAID 발표 일주일 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동료평가 없이 '실수'로 홈페이지에 공개한 초안 보고서가 학술지에 게재된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237명의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158명에게는 렘데시비르를, 79명에는 위약을 투여했는데 효과를 입증할 만한 데이터를 얻지 못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WHO 홈페이지에 초안이 공개됐을 때 길리어드는 중국에서 코로나19 임상시험이 조기에 종료돼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결론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앞서 지난달 17일에는 미국 시카고대학 연구진이 코로나19 환자 125명에게 렘데시비르를 투여한 결과 발열과 호흡기 증상이 빠르게 회복돼 일주일 이내에 대다수가 퇴원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렘데시비르와 관련된 연구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치료제로 효능이 '입증'된다면 국내에서 쓸 수 있도록 특례 수입을 검토하는 등 지원하겠다면서도 아직 판단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당장 공개되는 임상시험 중간 결과가 엇갈리는 데다 아직 연구가 종료되거나 검증된 상황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종 감염병의 경우 환자를 긴급히 치료하기 위해 명확한 대조군 없이 약물을 투여하는 경우도 많아 임상시험 설계가 어떻게 됐는지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의약품의 유효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실험군 및 대조군 대상자 수, 대상자의 증상발현 정도, 이상반응, 중도 탈락률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실험군이 너무 소수는 아닌지, 동일한 조건의 환자를 정확히 비교했는지, 임상시험이 중단돼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는 건 아니었는지 등을 모두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 나오는 연구 결과는 일부에 불과하므로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며 "신뢰할 만한 연구인지 확인해야 하므로 아직 속단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렘데시비르의 효과와 안전성 등을 확인하는 게 우선해야 하며,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은 감염병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경고도 있다.
박혜숙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한국과총의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 어디까지 왔나' 포럼에 참석해 "의약품은 치료 효과뿐만 아니라 사용 시 부작용보다 이득이 더 큰지 평가해야 한다"며 "신속한 심사는 사회적 요구가 아니라 안전성 근거 자료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