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광주 법정서 또 혐의 부인…차량엔 '계란 투척'

입력 2020-04-27 20:16
전두환(89)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피고인 신분으로 27일 다시 광주 법정에 섰다.

지난해 3월 발포 명령을 부인하느냐는 질문에 "왜 이래"라고 고함쳤던 전씨는 이날 출두에서 왜 책임지지 않느냐는 물음에 침묵했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것으로 알려진 전씨는 재판 내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으나 "내가 알기로는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명확하게 표현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25분께 부인 이순자(81)씨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출발, 낮 12시 19분께 광주지법 후문을 통해 법정동 후문에 도착했다.

경호원이 내민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걸어갔으나 특별히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나 많은 죄를 짓고도 왜 반성하지 않는가,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돌아보거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경호원을 따라 이동했다.

재판은 이날 오후 1시 57분부터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김정훈 부장판사 심리로 3시간 25분간 진행됐다.

전씨는 청각 보조 장치를 착용했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해 신뢰관계인 자격으로 동석한 부인 이씨의 도움을 받아 생년월일과 직업, 거주지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을 했다.

검사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전씨는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비교적 분명한 어투로 혐의를 부인했다.

전씨는 "만약에 헬기에서 사격했더라면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무모한 헬기 사격을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 중위나 대위가 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재판 내내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과 변호인은 1995년 검찰 조사와 5·18 당시 광주에 출동한 군인들의 진술 신빙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전씨의 법률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1995년 검찰 스스로 헬기 사격은 사실이 아니라고 결정한 사안임에도 검찰이 한마디 해명도 없이 공소를 제기한 것은 자기모순이다 시류에 따라 기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당시 광주에 파견된 헬기부대 조종사, 정비사 등이 100여명이고 계엄사 군인들까지 수천 명일 텐데 단 한 사람의 진술도 나오지 않았다 과거 조비오 신부에게 군인들이 공개 질의서도 보내고 조 신부를 찾아갔으나 면담을 허락하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당시 검찰 결정문을 보면 헬기 사격 주장이 있었지만 사상자를 발견하지 못해 내란 범죄로 기소하지 못했다"며 "기존 검찰 결정과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헬기 조종사나 공수부대 관계자들은 기소되지 않았다뿐이지 군사 반란의 행위자들"이라며 "자신들이 책임질 만한 진술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맞섰다.

정 변호사는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조사 결과 헬기 사격을 인정한 데 대해서도 "국민을 분열시키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일부 세력의 무책임한 주장이다. 군이 광주시민을 적으로 규정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듣던 방청객 한 명은 "그럼 광주시민을 누가 죽였습니까? 공수부대가 죽였잖아! 저 살인마, 전두환 살인마"라고 큰소리로 항의하다가 법정에서 퇴정당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은 한차례 휴정을 거친 뒤 오후 5시 22분께 마무리됐다.

전씨 부부는 오후 5시 43분께 광주시민들의 거센 비난과 항의를 받으며 승용차에 타고 법원을 떠났으며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기소 됐다.

다음 재판은 6월 1일 오후 2시와 6월 22일 오후 2시에 열리며 각각 검찰 측과 피고인 측 증인신문이 진행된다.

광주 전일빌딩 탄흔을 감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와 5·18 연구소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5·18단체는 이날 오전부터 법원 앞에 이른바 '전두환 치욕 동상'을 설치하고 전씨 구속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동상은 전씨가 수의를 입은 채 무릎을 꿇고 감옥에 갇힌 모습을 형상화했다.

소복을 입은 5·18 희생자 어머니들과 5·18 단체 관계자들, 일반 시민 등 100여명은 전씨가 법원에 도착해 재판을 받는 동안 법정동 밖에서 '전두환은 5·18의 진실을 밝혀라' '5·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씨의 사죄를 촉구했다.

5·18 상징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과 '5월의 노래'도 시위 도중 등장했다.

경찰은 5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청사 곳곳을 통제했고 전씨가 오가는 시간대에 일반인들이 인도 밖으로 지나다닐 수 없도록 철제 울타리까지 설치했다.

5·18 때 가족을 잃은 오월 어머니집 회원들은 "전두환 얼굴이라도 보려는 건데 경찰이 과잉대응을 한다"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전씨는 경찰의 호위 속에 검은색 승합차를 타고 법원을 나섰다.

이때 법원 밖에서 길목을 지키던 5·18단체 관계자가 차량에 계란을 던지며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지만 큰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5·18 단체 관계자는 "전두환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호의호식해 5·18 영령들에게 부끄럽다"며 "전씨가 5월 영령들에게 사죄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만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