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10년이 시작되는 첫 해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새로운 기축통화 전쟁이다.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할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소식도 들렸지만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국가 주석의 야망이 담겨있는 만큼 당초 계획대로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종전의 가상화폐와 페이스북의 리브라(Libra)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했다는 차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 왔다. 실물 화폐와 달리 그 자체적으로 가치(value)가 없는 화폐가 교환 수단, 가치 저장, 회계 단위 등과 같은 3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정화(legal tender) 여부와 발행기관이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와 디지털 위안화를 1대 1로 교환해 구권을 신권을 교체할 대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거래 단위 축소)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시중은행을 통해 현재 위안화를 예치한 만큼 금융 소비자(고객)의 전자수첩에 넣어줘 사용토록 하는 결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리디노미네이션 추진한 국가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디지털 위안화가 발행할 경우 의외로 빨리 정착될 가능성도 높다. 통제력이 강한 중국으로서는 내부적으로 다지털 위안화를 정착시키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나라 밖으로도 세계 1위의 수출대국으로 부상한 점을 감안하면 경상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비중이 빨리 올라갈 가능성도 높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발행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권력까지 넘보는 아마존, 구글 등을 견제하기 위해 페이스북의 라브라 발행을 불허하는 트럼프 정부의 방침과 관계없이 미국 중앙은행(Fed)은 디지털 통화 시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대책반을 구성해 준비해 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있다는 평가다.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영란은행 등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디지털 위안화가 도입돼 정착된다면 금융위기 시스템이 없는(non system) 국제통화질서에 커다란 변화가 닥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탈(脫)달러화 움직임은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디지털 위안화’, 앞으로 도입될 ‘디지털 달러화와 디지털 위안화’ 간 2차원적인 기축통화 전쟁이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통화 시대가 전개될 경우 각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통화정책을 수행할 것인가’ 하는 또 하나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 있어서는 중앙은행의 목표를 ‘물가 안정’에만 둘 수는 없다. 기준금리 변경, 유동성 조절 등과 같은 종전의 통화정책 수단도 무력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효과는 반감된다.
통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른 경제주체도 공유가 가능해 짐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선도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즉, 중앙은행과 시장 참여자 간 관계가 ‘수직적’이 아니라 ‘동반자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과 중앙은행 총재의 위상,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체계(interest system)은 약화가 불가피하다.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각국 국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새로움과 복잡성(novelty & complexity)’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고. 화폐개혁 논의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사 금융 행위도 판치게 된다. 이런 환경에 맞춰 금융 감독이 새로운 방식, 이를 테면 옴니버스 방식 등으로 접근하지 못할 경우 각국 국민의 화폐생활에 있어서는 일대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도 조만간 닥칠 디지털 통화 시대에 맞춰 ‘디지털 원화’를 발행할 것인가를 시작으로 중앙은행 목표 수정, 통화량 등 새로운 통화지표 개발,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 무력화 방지, 인과 관계와 추적성이 중간 표적변수 개발,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정책 전달경로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그리고 리디노미네이션 단행 여부 등을 사전해 준비해 놓아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디지털 위안화가 발생될 경우 달러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 가장 궁금하다. 가뜩이나 미국 중앙은행(Fed)이 코로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1913년 설립 이래 가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날 대까지 매입 대상을 가라지 않고 무제한 달러화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인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코로나 사태 이후 Fed는 초당 100만 달러를 풀어내고 있다. 이처럼 달러화가 많이 풀릴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은 경상수지적자 등을 통해 달러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Fed가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지마자 달러 가치가 폭락할 것이라는 시각이 곧바로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운용자인 래이 달리오는 달러화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로 잘 알려진 로버트 기요사키는 코로나 사태 이후 재테크 수단으로 달러화를 사두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달러 가치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할 경우 기축통화국인 미국인 더 이상 ‘글로벌 시뇨리지(global seigniorage·화폐발행차익)’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 다른 국가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달러 유동성에서 자유로운 국가를 중심으로 외화보유에서 달러 비중을 낮추는 탈(脫) 달러화 추세가 더 빨라지고 있다. 디지털 통화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띤다. 세계 교역에서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세계화 쇠퇴)’에 맞춰 결제통화 상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형태의 자급자족(autarky) 성향이다.
Fed가 달러 가치를 유기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풀린 달러화를 환수하는 출구전략이다. 하지만 2015년 12월 금리인상 이후 추진됐던 출구전략 추진 과정에서 입증됐듯이 실행에 옮기는 쉽지 않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크게 세 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금본위제 부활’이다. Fed가 달러화 공급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금값이 오르는 것도 이 요인이 한 몫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금 공급량 제한과 금 보유국에게 또 다른 특혜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실행에 옭기기는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 사태로 더 빨라질 온라인과 모바일 시대에 맞춰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앞당기는 방안이다. Fed는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위한 사전작업을 마무리해 놓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 페이스죽의 ‘리브라’를 디지털 달러화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화폐거래단위를 축소하는 ‘리디노미네이션’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국민의 저항이 의외로 큰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는 데에는 해당국 통화의 대외위상 증가와 물가를 안정시키는 매력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이 방안이 논의되는 것은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가장 크게 우려되는 달러 가치 폭락과 인플레이션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최종권한을 갖고 있는 Fed는 화폐개혁보다 출구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 발행과 코로나 사태 이후 국제통화제도에서 다가올 커다란 변화에도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맞아 그 어느 국민보다 달러화를 많이 사둔 한국 국민 입장에서는 달러화 가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