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검투사'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47)가 공연 도중 오열해 연주가 한동안 중단됐다.
23일 공연기획사 오푸스에 따르면 리시차는 전날 오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내한 리사이틀에서 정규 프로그램 마지막 곡인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하는 도중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멈췄다. 3악장과 4악장을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리시차는 공연기획사 오푸스를 통해 "갑자기 86세이신 고령의 어머니가 떠올랐다"며 "코로나 19 때문에 계속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고, 여기 와주신 관객들도 모두 마스크를 낀 채로 있는 것이 제 마음을 건드렸다. 곡도 공감을 일으키는 곡이라 감정이 복받쳐 연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리시차는 '함머클라비어'를 끝내 완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물을 닦고 3분여 만에 복귀해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14번 '월광'을 포함해 쇼팽, 리스트, 라벨,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했다. 전체 공연 시간만 2시간 30분에 달했다. 이 가운데 앙코르곡 연주 시간은 50분 정도였다.
그는 "달빛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비추고 감싸주는 것처럼 사람들을 감싸주고 싶어 월광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했다"고 설명했다.
앞선 정규 프로그램은 오롯이 베토벤의 작품으로만 꾸며졌다. 피아노소나타 17번 '템페스트'와 23번 '열정', 29번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했다.
이날 공연에선 2천500여석 가운데 900여석이 찼다. 관객뿐 아니라 연주자도 마스크를 차고 리사이틀을 진행했다.
그는 앞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코로나 19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더는 숨을 곳이 없게 됐다. 우리는 이미 공포로 마비됐고, 내 연주가 이 공포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작은 몸짓이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는 좀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음악과 예술은 우리를 단결시키고, 정신을 고양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리시차는 화려한 기술과 넘치는 힘, 빠른 속도로 몰아치는 연주 덕택에 '피아노 검투사' '건반 위의 마녀'라는 수식어가 붙은 우크라이나 출신 피아니스트다. 열정도 넘쳐 2013년과 2017년 내한 때 무려 3시간에 걸친 리사이틀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17년에는 공연이 끝나고 오전 1시까지 팬들과 사인회를 가져 화제가 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