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펜데믹으로 진행 중인 가운데서도 대만이 상대적으로 이번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일 대만 질병관리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현지시간) 현재 대만 내 코로나19 누적 확진 환자는 총 40명으로 이 가운데 1명이 숨졌다.
대만의 코로나19 환자 수는 곧잘 비교 대상이 되곤 하는 홍콩의 100명(사망자 2명)보다 훨씬 적다. 대만의 인구는 2천300만명가량으로 홍콩의 세 배에 달한다.
동북아에서 이미 한국의 확진 환자가 이미 4천명을 넘어섰고,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를 제외한 일본의 확진 환자도 250명을 넘어선 상황이어서 적어도 현재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대만이 양호한 코로나 19 방역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대만의 신속한 국경 통제 및 검역 강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코로나19 환자 수와 인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선 나온다.
대만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달 7일부터 중국 본토와 홍콩과 마카오에서 오는 비(非)대만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대만인이 이 지역에서 돌아오는 것은 허용됐지만 2주간 자가 격리를 하게 함으로써 코로나19 사태의 진원지인 중국으로부터의 영향을 최소화하려 했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대만도 중국 본토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다. 그렇지만 당장 경제보다는 보건 안전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은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대만 독립 지향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집권 이래 대만은 이미 중국 본토와의 관계가 상당히 소원해진 상태여서 이런 결정을 비교적 큰 부담 없이 내릴 수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렇다고 대만이 꼭 관계가 소원했던 중국 본토에만 이런 조처를 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자 대만은 지난달 24일부터 한국의 전염병 등급을 3단계로 격상했다. 다음 날부터는 한국에서 오는 모든 외국인에게도 2주간의 자가 격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대만 정부가 일관되게 매우 방어적인 국경 관리 정책을 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관광 보복'으로 대만 내 중국 여행객이 작년 하반기부터 크게 감소한 상황이라는 점도 대만에는 행운 요인이었다.
중국은 차이 총통의 재선 도전을 앞두고 작년 8월부터 갑작스럽게 중국 자유 여행객의 대만 여행을 전면 금지했다
연간 100만명 이상인 자유 여행객을 대만에 못 가게 함으로써 대만에 경제적 타격을 가해 차이 총통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려는 의도였다.
대만 정부는 1월 말까지 중국 본토인 단체 관광객을 모두 돌려보냄으로써 다른 나라들과 달리 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중국 본토 관광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저지전에 나설 수 있었다.
이처럼 외부로 강력한 장벽을 세우는 것 못지않게 대만 정부가 효과적인 전염병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대만이 지난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로 큰 인명 피해를 본 이후 전염병 대응 체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를 효과적으로 정비했다는 점이다.
현재 대만에서는 치과의사 출신인 천스중(陳時中) 위생부장(장관)이 이끄는 중앙전염병지휘센터가 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현행 법령을 기반으로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다른 민주주의 체제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23일 중국이 우한(武漢)을 긴급 봉쇄해 코로나19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급속히 커지자 중앙전염병지휘센터는 곧장 대만의 의료용 마스크를 1개월 동안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긴급 명령을 발동했다.
불안해진 시민들이 너도나도 마스크 구하기에 나서 품귀 현상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자 모든 마스크를 약국을 통해서만 유통될 수 있도록 조처했다.
의료보험 카드를 갖고서만 마스크를 정해진 양만큼만 살 수 있어 매점매석이나 줄서기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종의 '마스크 구입 실명제' 조치로 볼 수 있다.
질병 확산 방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처인 자가 격리가 엄격하게 준수되게 하는 법령도 마련되어 있다. 자가 격리 등 규정을 위반하고 무단이탈한 사람에게 처하는 벌금은 기존에 최고 30만 대만달러(약 1천190만원)였는데 이번에 최고 100만 대만달러(약 3천900만원)까지 더 높였다.
물론 대만 내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지금까지 적다고 해서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리라는 것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대만에서도 최근 들어서는 감염 경로를 확인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나오면서 지역사회 내 본격적인 전파에 관한 우려가 한층 커졌다.
그러나 적어도 대만 정부가 초기에 코로나19 확산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면서 장기전에 대비한 의료 물자를 충분히 비축하고, 의료 인력과 시설을 정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상당히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만의 한 외교 소식통은 "대만은 사스 사태 이후 질병 방역 체계 정비에 많은 역량을 투입했다"며 "전문가인 위생복지부 장관이 주도하는 질병지휘센터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고,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법제가 잘 정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